강변길에도 도심공원에도 동네 뒷동산에도 모두가 걷겠다고 아침 일찍, 또는 일과를 마친 저녁 무렵 너도나도 집을 나선다. 그야말로 ‘걸어야 산다’고 외치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손을 크게 흔들면서 걷는 ‘빠른 걸음걸이’가 이 시대의 또 다른 풍속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걷겠다는...
늘 이맘 때(음력 4월 15일) 쯤이면 선불교(禪佛敎) 절집안은 90일의 여름안거(安居)가 시작된다. 이를 결제(結制)라고 부른다. 석 달 동안 산문 밖의 출입을 삼가하고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토록 만든 특별기간이기도 하다. 함걸(咸傑 1118~1186) 선사는 ‘자기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4면 8방에 맑은 바람이 흐르도록 만...
강원(승가대학)을 졸업한 지 어느새 이십여 년이 흘렀다. 해마다 한두 번 모임을 통해 동기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회포를 나누곤 했다. 4년 동안 한방에서 자고 먹으면서 함께 공부한 까닭에 피차의 살림살이와 성격을 서로 훤하게 꿰고 있는지라 언제 만나도 편안하다. 이제 나름대로 위치를 가진 ‘중진급’이지만, 모였...
사내(寺內)통신망에는 평택 천암함 빈소의 조계종단 문상소식과 송광사 법정스님의 사십구재 과정을 머리기사로 나란히 띄워 놓았다. 더불어 며칠 동안 초겨울에 어울릴 것 같은 사나운 봄비가 연신 내렸다.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듯 날씨까지 우울하다. 차 한 잔을 들고서 연구실 창을 통해 밖을 내려다보니 조계사 일...
해인사 다녀오는 길에 교통체증으로 덜 막히는 방향을 찾다보니 성북동 길을 통해 조계사로 오게 되었다. 운전 중임에도 불구하고 길상사 앞을 지날 때는 저절로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평일인데도 주차장은 비좁았다. 법정(法頂 1932~2010)스님께서 던진 ‘무소유’라는 시대적 화두에 모두가 공감한 탓에 그 여운은...
벚꽃 지는 밤/꽃을 밟고/옛날을 다시 걸어/ 꽃길로 /꽃을 밟고/나는 돌아가네 시처럼 흩날리는 벚꽃 속에서 죽어갔다는 전설 한하운(韓何雲1919~1975) 시인의 ‘답화귀(踏花歸;꽃을 밟으며 돌아가다)’의 한 구절이다. 중국 북경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관료였지만 뜻하지 않게 찾아 온 나병 때문에 좌절했다. 하...
이즈음 전자메일함을 열 때마다 영어로 된 편지가 곧잘 들어와 있다. 재주를 돌아보지 않고 의욕만 앞세운 채 전통사상서 한글번역 및 영역작업에 끼어든 탓이다. 한문으로 된 한국 역대 고승들의 명저를 엄선한 13권이 일차작업의 대상이었다. 7권 한글본은 지난 해(2009) 12월에 이미 나왔고 나머지 6권은 이번 3월 ...
[벗님글방/원철스님]남선사 모래·바위·이끼만으로 정원 꾸며절제미로 옛 선사들의 삶 한눈에 그려져 명월(明月)은 암자를 비추고암자(庵子)는 명월을 담았네. 일본 고베 선창사(禪昌寺)에 머물던 경안(慶安 케이안)스님이 당시에 주지이면서 동시에 그의 스승인 월암(月庵 겟간)선사 문집에 남긴 선시이다. 그는 650년...
2011년 대장경 쳔년의 해종적 묘연했던 대장경, 1/3 오롯이 보존돼 있어독서인구 늘리려한 노력의 결정체 여전히 유효 일요일 오후 느긋한 걸음으로 삼청동을 걸었다. 북촌이라고 불리는 아기자기한 골목과 나지막히 소박한 기와집이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서울의 또 다른 명소이...
[벗님글방/원철스님]인간세상서 볼 수 있는 천상세계, 보현보살 머무는 곳 만리천위은색계(萬里天圍銀色界) 찰라지설화만발(刹那枝雪花滿發) 만리 먼하늘은 은빛으로 에워쌓여 눈 깜짝할 새 가지마다 눈꽃 가득하네 신년 벽두부터 온 세상에 흰 눈이 가득 내렸다. 은세계의 나뭇가지 마다 눈꽃이 소담스레 피...
[벗님글방/원철스님] 자서전의 명암빛바랜 기억이 못난 삶 포장하는 것은 아닌지시간의 그림자 돌아보며 과거 되돌아보는것도 몇년 전에 난생 처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을 때 그 당황스러움은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다. 해인사에서 오랫동안 관여했던 월간지에서 ‘전관예우’를 한답시고 이루어진 인물취재였다. 사진...
[벗님글방/원철스님] 성 안과 성 밖은 엄연히 달랐다. 한양의 ‘사대문 안’은 단순한 경계선의 의미를 넘어선 또다른 상징성을 내포한 까닭이다. 한양도성이 처음 만들어질 때 성 안과 밖을 차별하는 대표적인 사건이 인왕산 선바위(禪岩)다. 불교도시인 개경에서 유교도시를 지향하는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국교가 바뀐 ...
[벗님 글방/원철스님]사람냄새 가득했던 훈훈한 공간에 ‘인공 향기’야사·뒷뜰·후문, 앞-뒤 조화로운 공존에 필수 아시다시피 피맛길이란 이름은 종로대로의 고관들이 탄 말(馬)의 행렬을 피해서(避) 다니던 길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종로가 양반길이라면 피맛길은 서민의 길이다. 대로는 큰길만의 몫이 있고, 골목길은 ...
[벗님글방/원철스님]수행공간 ‘굴’과 휴식공간 ‘집’ 조합한 청허방장 ‘토굴’이란 말 자체에서 주는 어감은 때론 팽팽한 긴장감으로 다가오고 때론 느긋함이 함께하는 이중성을 가진다. 그것으로 인하여 대중생활을 하는 출가자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살아보기를 꿈꾸는 이상향 같은 곳이다. 내로라하는 선지식들은 토굴...
[벗님글방/원철스님]‘무소유’ 하며 정진한 사문과 욕심 안 낸 상량문 무소유가 기본인 사문(沙門)은 본래 ‘집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노천 내지는 나무 아래 동굴 속에서 정진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후 부득이한 사정으로 죽림정사, 기원정사 등 소박한 집에서 살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절집은 대궐과 버금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