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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겨울 눈이 꽃 같더니 봄 꽃이 눈 같다’

등록 2010-04-05 17:20

 벚꽃 지는 밤/꽃을 밟고/옛날을 다시 걸어/

 꽃길로 /꽃을 밟고/나는 돌아가네

  

 시처럼 흩날리는 벚꽃 속에서 죽어갔다는 전설

 

 한하운(韓何雲1919~1975) 시인의 ‘답화귀(踏花歸;꽃을 밟으며 돌아가다)’의 한 구절이다. 중국 북경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관료였지만 뜻하지 않게 찾아 온 나병 때문에 좌절했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아름다운 시를 여러 편 남겼다. ‘벚꽃지는 밤에 돌아가고 싶다’는 글 속에서 생사관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아무래도 일본 시(和歌)를 빼고서 벛꽃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이교(西行 1118~1190)는‘백조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절명시(絶命詩)처럼 비장한 시를 남겼다. 

 “원컨대 (벛)꽃나무 아래에서 봄날 죽고 싶구나“

 그는 헤이안(平安 794~1185)시대의 유명한 시인이며 또한 승려로서 벛꽃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 시처럼 흩날리는 벚꽃 잎 속에서 죽어갔다는 전설을 남겼다. 열반 후 540년이 지난 어느 날 홍천사(弘川寺 비로가와데라) 에 머물던 후학이 그의 묘를 발견했다. 무덤 둘레에 일천그루 벛꽃나무를 심어 마음으로 조의를 표했다. 이후 그 나무는‘서행스님의 벚꽃(西行櫻 사이교자쿠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서행스님 이전에는 일반적으로‘꽃’이라고 하면 매화를 말했으나 그의 작품이후 ‘꽃’은 벚꽃을 가르키게 되었다. 이후 ‘하나미(花見;꽃구경)’는  앞글자를 생략해도 당연히 벚꽃놀이를 의미했다. 

 

 ‘서러움도 꽃이 된다’는 조사, 삶과 죽음의 절묘한 대비

 

 얼마 전 열반하신‘무소유’의 법정(法頂 1920~2010)스님도 만년의 길상사 법회에서 벛꽃을 포함한 많은 꽃들에 대한 찬사(讚辭)를 남겼다. 

  “매화는 반개(半開;반쯤 핌)했을 때/ 벛꽃은 만개(滿開;완전히 핌)했을 때/

    복사꽃은 멀리서 봤을 때/ 배꽃은 가까이서 봤을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봄꽃을 무척이나 좋아했기에“내가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아름다운 꽃공양을 나에게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에 뿌려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는 글을 열반송을 대신하여 이미 남긴 터였다.“그토록 사랑하시던 봄 서러움도 꽃이 됩니다”는 어느 거사님의 조사는 “이 찬란한 봄날 꽃처럼 활짝 열리십시오”라는 당신의 법문과 댓구를 이루면서 삶과 죽음이 대비되어 더 큰 울림으로 닿아왔다.

 

 무엇보다도 손상좌가 안고있던 ‘비구법정(比丘法頂)’이라는 단 4글자의 위패문구에서 간결한 삶을 추구했던 당신의 꼬장꼬장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기존 위패들은 앞뒤로 붙은 길다란 수식어 때문에 누가 죽었는지 위패글만 보고 알아차리는데 한참 걸리는 것과 상당한 차별성을 보인 그 자체가 참으로 신선했다. 제자들에게 위패문구까지 정해주고 가신건 아닌지 모르겠다. 관례가 된‘각령(覺靈)’이라는 말은 교리적으로도 문법적으로도‘토끼 뿔(兎角)’같이 말이 안되는 표현을 조합하여 습관적으로 사용해 온 것도 이번 기회에 다시 점검해 볼 일이다. 만약 꼭 호칭을 붙여야겠다면 ‘진위(眞位)’라는 표현이 선종적으로 마땅할 것이다. 

 

 무상을 찰나에 보여주니 이보다 더 운치 있는 수행법이 있으랴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벛꽃은 활짝 피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그 기간은 짧고 이내 덧없이 져버린다. 생사를 가장 짧은 순간에 이렇게 극적으로 표현하는 화려한 꽃도 드물다. 그것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연유이다. 그야말로 무상을 찰나에 보여준다. 해골을 보고 ‘인생무상’을 공부하라는 관법(觀法)보다는 훨씬 더 아름답고 운치있는 수행법이다. 그런 까닭에 일휴(一休 1394~1481 잇꾸우)선사의“봄마다 피는 벚꽃을 볼 때 생(生)의 무상(無常)함을 아파하라”는 게송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만해(萬海 韓龍雲 1879~1944)스님은 겨울과 봄을 동시에 보면서 눈과 꽃을 함께 보는 통찰력으로‘견앵화유감(見櫻花有感;벚꽃을 본 느낌)‘이라는 한시를 남겼다. 헛 것(幻化;非眞)인줄 알지만 그래도 거기에서 인간의 희노애락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중생심까지 가감없이 솔직하게 드러낸 수작이라 하겠다.   

   

 작동설여화(昨冬雪如花) 금춘화여설(今春花如雪)

 설화공비진(雪花共非眞)  여하심욕열(如何心欲裂)

 지난 겨울 내린 눈이 꽃과 같더니

 이 봄에는 꽃이 도리어 눈과 같구나.

 눈도 꽃도 참(眞)이 아니거늘

 어째서 내 마음은 찢어지려고 하는고.

 

 그래도 ‘바람불어 벛꽃잎이 눈보라처럼 흩날리는(櫻吹雪)’풍광을 즐기려 봄길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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