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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성 안과 밖 경계를 넘어선 마음 속 그 무엇

등록 2010-01-13 00:07

[벗님글방/원철스님]

 

 

성 안과 성 밖은 엄연히 달랐다. 한양의 ‘사대문 안’은 단순한 경계선의 의미를 넘어선 또다른 상징성을 내포한 까닭이다. 한양도성이 처음 만들어질 때 성 안과 밖을 차별하는 대표적인 사건이 인왕산 선바위(禪岩)다. 불교도시인 개경에서 유교도시를 지향하는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국교가 바뀐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이 바위(禪岩)는 승려가 장삼을 입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까닭에 알게 모르게 인근 주민들에게 성상(聖像)으로써 대접을 받아왔다. 

 

새로운 권력에 밀려 성 출입 금지

 

태조가 도성을 쌓을 때 왕사인 무학대사와 개국공신 정도전이 이 ‘자연산 바위’를 놓고 ‘성안에 두느냐? 밖에 두느냐?’를 놓고서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였다.  결국 지는 해는 떠오르는 실세에게 밀렸고 선암 역시 성 밖으로 밀려났다. 이에 무학대사는 크게 한 숨을 쉬며 “이제 스님네들은 선비의 책보따리나 짊어지고 다니는 신세가 되겠구나.”하고 장탄식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학대사의 걱정은 이후, ‘가방모찌’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그 성을 지키고 수리 보수하는 짐까지 떠안아야 했다.  현재 남아있는 북한산의 절들은 대개 이런 역할을 했다. 더불어 승려는 도성출입 조차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백년이 흘렀다. 구한말 한반도가 열강의 각축장이 되면서 일본 일연종의 사노젠레이(佐野前勵) 스님이 승려의 도성출입을 허락해 달라는 건의문을 조정에 올렸다. 그 결과 1895년 4월 출입금지령이 해제되었다. 성 밖의 힘에 의해 성안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 무렵 선바위 근처에는 남산에 있던 국사당이 이사를 왔다. 일본신사(神社)를 만들면서 헐린 까닭이다. 이후 토속불교와 망명해온 민간신앙이 함께 어우러져 독특한 불이(不二)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은 예로부터 아이를 원하는 사람에게 영험있는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서울인근의 유명성지이기도 하다.

 

그와 더불어 시간이 지나면서 도심의 성곽들은 일제에 의해 도심성벽이 일부 철거되면서 도로부지가 되었고 이후 난리통에 서민들은 먹고 사느라고 성돌들은 여염집 축대로 혹은 장독대로 헐려 나갔다. 그리하여 이제 성 안팎의 경계마저 모호해졌다.  더불어 성문들도 이름만 남기고 하나둘씩 없어져갔다. 급기야 대표성문인 남대문까지 얼마 전에 스스로 산화해버렸다. 성 안과 밖의 경계가 아예 필요 없어진 까닭에 그 존재감이 스스로 의심스러운 탓이었을 것이다.

 

들고 나는 것도 내면에서 결정하는 것

 

2500년 전의 일이다. 사리불이 성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침 성문을  나서는 ‘월상녀(月上女)’와 마주쳤다. 달(月)보다 더 고운(上) 그녀(女)인지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먼저 아는 체 하며 인사를 건넸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달덩이’에서 지금은 ‘V라인’에 밀렸지만 그 때는 그 말이 미인을 형용하는 대표적 찬사이던 시절이었다.

 

‘어디로 나가시는 길이오?“

“저도 들어갑니다”

 

나오는 사람보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 도리어 들어간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들어가고 있고 당신은 분명히 나오고 있는데 어째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오?”

 

사실 알고보면 그녀는 이미 성 안과 성 밖의 경계가 없는 내면의 수행경지에 이른 까닭에 나온 당연한 답변이었다. 사리불은 현상적인 면에서 질문을 했고, 그녀는 아가씨 답지않게 본질적인 영역에서 대답했다. 우문현답이었다.   

 

이제 서울도 물리적인 성의 안팎은 없어졌다. 하지만 ‘사대문 안’은 여전히 살고있는 사람들에게는 자부심의 공간이다. 아무리 ‘강남’ 운운해도 사대문 안의 역사까지 대신할 수는 없는 탓이다.  600년 세월 속에서 그 이름만큼이나 사대문을 잇는 성곽들은 단순한 돌로 만들어진 조형물 이상의 이미지로 굳어진 까닭이다. 이제 다시 문화시대가 열리면서 복원을 외치고 발굴도 하며 없어진 성문도 만들고 성벽도 다시 쌓고 있다. 이즈음 조명으로 밝혀진 산 위의 겨울성곽은 한 해의 마감과 새해의 시작을  알려주듯 처연한 듯 하면서도 또 당당하게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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