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길에도 도심공원에도 동네 뒷동산에도 모두가 걷겠다고 아침 일찍, 또는 일과를 마친 저녁 무렵 너도나도 집을 나선다. 그야말로 ‘걸어야 산다’고 외치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손을 크게 흔들면서 걷는 ‘빠른 걸음걸이’가 이 시대의 또 다른 풍속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걷겠다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그동안 ‘빨리빨리’를 외치며 차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했던 길들이 ‘느리게’를 외치는 사람들 품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차의 중간인 자전거 길까지도 합세하고 있다. 걷기동호회가 늘어나면서 전국적으로 걷기 좋은 길은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적지 않는 사람을 불러모으고 있고 지방자치단체마다 나름대로 옛길을 복원하여 지역홍보에 어김없이 등장시키고 있다.
원조는 성지순례길
탈것이 없던 시절에는 모두가 걸어다녔다. 마차는 출세한 사람들이나 탈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과거 길에 오르던 젊은이들은 짚신을 몇 켤레씩 준비하며 돌아올 때는 꼭 말을 타고 오리라고 스스로에게 맹세했을 것이다. 문경 새재길은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걷기 좋은 길이다. 오늘날 청년들은 ‘언젠간 저 길을 꼭 걸어보리라’고 달력에 붉은 동그라미를 치고서 벼르는 시대가 되었다. 제주도 올레길이 요즈음 가장 인기 있는 걷는 길이다.
걷기의 원조는 아무래도 ‘성지순례길’이라고 할 것이다. 걷어서 가는 것조차도 불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온몸으로 절을 하면서 성지를 향해 걷는 티벳의 오체투지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순례길이다. 중국의 오대산 구화산 낙가산 아미산 등 4대 불교성지에는 삼보일배로 참배 오는 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숭고하긴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흉내 내기에는 쉽지 않는 일이다.
일본 시코쿠(四國)에는 1400km를 걸어 45일 동안 88개 사찰을 찾는, 1200년의 역사를 가진 순례길인 ‘오헨로(お遍路)’가 있다. 오늘도 그 길을 흰 장삼차림으로 걷는 오헨로상(さん)들을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다. 이 지방 출신인 일본 진언종의 개산조인 홍법공해(弘法空海:774~835) 대사의 수행 흔적을 따라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순례길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 꿈
이즈음 걷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꿈인 ‘산티아고 가는 길’이 뜨고 있다. 본래는 ‘성인 야곱의 열반지’를 찾아가는 천년 역사의 성지순례길이었으나 이제는 대중들에겐 걷는 길의 대명사가 되었다. 프랑스 쪽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800km를 한 달 정도 걷는 길인데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고 대중화된 길이라고 할 것이다. 서명숙 작가도 여기를 다녀온 뒤 그 영감으로 제주 올레길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의 교훈을 얻기 위해 사람들과 떨어져 사색의 시간을 갖기 위해 오늘도 이 길을 떠난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길 위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향해 걷다가 자기도 모르게 순례자가 되는 이중적 매력이 이 길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생명력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행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한다. 사색과 건강을 위한 무작정 걷기만으로 뭔가 허전하다. 그래서 고행이 아니면서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는 걷기인 성지순례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옛 인도의 성인인 기야다(祇 夜 多) 존자에게 어떤 왕이 물었다. 그는 예의를 갖추기 위하여 왕의 신분이었지만 마차를 타지 않고 먼길을 일부러 걸어서 왔다.
“저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오실 때도 길이 좋았으니 가실 때도 길이 좋을 것입니다. ”
올 때의 마음처럼 돌아가서도 그 마음을 잃지 말고 진리를 구하듯 정치를 하라는 의미였다.
길은 도(道)다. 걷는 것이 바로 도를 닦는 수행인 것이다. 시간 날 때마다 열심히 ‘나는 누구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걷는다면 몸도 생기가 돋지만 정신 역시 살아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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