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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드라마 ‘펀치’ 실사판? 채동욱-황교안과 ‘국정원 댓글사건’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5-02-12 09:10수정 2022-08-19 17:43

[더(the) 친절한 기자들] 원세훈 ‘선거법 위반’ 적용과 그 적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채동욱 전 검찰총장

지난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이

댓글을 다는 등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데에는 거의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권 핵심인사들과 보수세력은 국정원의 행태를 공직선거법 위반죄로 다스리는 것만은 극렬 반대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에 흠집이 나기 때문입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관철시킨

검찰 내 인사들이 줄줄이 옷을 벗거나 좌천을 당한 뒤 2015년 2월이 돼서야 법원은 선거법 위반죄를 인정했습니다.

이제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막으려 온몸을 던졌던

검사와 언론인, 정권 핵심인사들의 민낯을 찬찬히 되짚어볼 시간입니다. _편집자주

박근혜 정권 ‘흠집’ 걱정해 호위무사 나선 법무장관 황교안

채동욱, 국정원 수사에 의욕 보이자 ‘혼외자’ 스캔들로 날아가

“역사는 시간에 무릎 꿇는다”…1심 뒤집고 원세훈 ‘선거법 유죄’

“난리가 날 것 같다. 대검을 비울 수 없으니 바로 올라와야겠다. 미안하다.”

2013년 6월2일 일요일 자정. 배터리가 다 떨어져 전원이 나가기 직전 황상철 <한겨레> 법조팀장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고 하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막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주 넘게 설득했지만 황 장관이 꿈쩍도 하지 않자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채 총장이 사표를 낼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부산 동부지청의 원전비리 수사를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고 기차를 타고 내려와 부산 숙소에 도착한 지 5분 만에 받은 전화였습니다.

같은 시각 서울 공덕동에 있는 <한겨레>는 한창 돌아가던 윤전기를 멈춰 세웠습니다. 10분 만에 법조팀 김정필 기자가 송고한 1400자짜리 기사가 1면 톱에 새로 배치됐습니다. 이튿날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전날 싼 출장가방을 든 채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근했습니다. 3일 <한겨레> 1면 톱에 실린 ‘황교안 법무부 장관, “원세훈 선거법 위반 적용 말라”…검찰 반발’ 기사(▶ 바로 가기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90198.html )로 서초동은 이미 전쟁터로 변해있었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정면 충돌→검찰총장 혼외자 의혹으로 낙마, 특별수사팀 와해→극적인 트위터 범죄 추가 기소→1심 선거법 무죄→2심 선거법 유죄’라는 드라마 같은 사태의 서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원회’의 반란

사태의 발단은 2013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명박 대통령 퇴임을 한달여 앞둔 7일 법무부는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를 꾸립니다. 2011년 9월 검찰청법이 개정돼 외부위원이 참여하는 검찰총장 후보추천위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역할을 하겠느냐’는 시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달 뒤 추천위는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법무부가 김학의 대전고검장, 안창호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우선순위 후보자로 제시했지만 뿌리친 겁니다. 당시 ‘박심’은 김학의 고검장에게 있었다는 게 정설입니다. 그런데도 추천위가 토론 끝에 김 고검장을 후보군에서 배제한 겁니다. 김 고검장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애정은 2013년 3월 명확히 드러납니다. 김 고검장은 동기 또는 후배가 검찰총장이 되는 상황이어서 옷을 벗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법무부 차관에 임명됩니다. 하지만 임명 6일 만에 ‘별장 성접대 의혹’을 받아 사표를 냅니다. 김 고검장의 아버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던 군인이었습니다.

추천위는 김진태 대검찰청 차장, 소병철 대구고검장, 채동욱 서울고검장을 후보자로 추천했습니다. 검사들은 “조직에서 가장 신망받는 3명이 추천됐다”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추천위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고 언론이 계속해서 지적하자 위원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이 반란이 어떤 ‘나비 효과’를 일으킬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위원회가 추천한 이들 중 총장을 임명하겠다”고 공약했던 박 대통령은 외통수에 몰렸습니다. 왜냐하면 ‘꼬장꼬장해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은’ 김진태 차장, ‘호남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때 국정원 내 TK 인사 숙청에 관여했다’는 소 고검장, ‘야당과 가까워보인다’는 채 고검장, 누구 하나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에서는 “대통령 취임 후 검찰총장 후보자 추천 절차를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이미 법리 검토를 마쳤다는 구체적 보도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박 대통령은 후보 추천 한달여만에 채동욱 고검장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합니다. 지명을 앞두고 국무위원 중 한 명이 채 고검장을 모처로 불러내 면접(일종의 충성심 검증)을 하기도 했다네요.

“흑을 백으로, 백을 흑으로 하면 안된다”

우여곡절 끝에 후보자가 된 채동욱 고검장은 국정원 사건 수사에 의욕을 보입니다. 2013년 4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사건의 중대한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관련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그는 총장에 부임하자마자 윤석열 여주지청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렸습니다. 채 총장은 수사팀에 이렇게 주문했습니다. “이 사건은 흑을 백으로, 백을 흑으로 하면 안 되는 사건이다. 사실관계만큼은 명명백백하게 밝히라.”

사실 채 총장은 취임 전부터 이 사건을 깊이 고민해왔습니다. 그는 2013년 2월 검찰총장 후보 3명 중 한 명으로 추천되자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가장 뜨거운 사건은 경찰에서 수사하고 있는 국정원 댓글 사건이다. 앞으로 검찰로 넘어올 텐데, 어떻게 할지…. 국정원이 직접 나선 것이고, 검찰이 수사를 하다 보면 현 정권의 리지터머시(정통성)를 건드릴 수 있다. 그러면 정말 골치 아픈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저 동네(대검찰청)에 가기도 싫다.”

이때부터 채 전 총장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조선일보, “얘기 안되는 사건”

황교안 법무장관.
황교안 법무장관.

여권에서는 이런 검찰의 행보를 불편해 했습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2013년 4월24일 <조선일보>가 그런 기류를 슬쩍 드러냅니다. <조선>은 이날 매우 이례적으로 1면에 칼럼을 게재했습니다. ‘대선 여론 조작 목적이면 330위 사이트 골랐겠나’란 제목의 이 칼럼은 ‘국정원이 한 행위를 대선 개입으로 보기 어렵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신문사가 1면에 칼럼을 싣는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게다가 수사가 끝난 뒤 결과를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막 수사가 시작되려는 단계였습니다. 이 단계에서 잠정 결론을 내린 뒤 이를 비판하는 칼럼을 싣는 건 더더욱 이례적입니다. 게다가 국정원 직원 김씨 등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당시까지 파악된 것만 400개가 넘었고, 이는 국정원이 지우다 지우다 실패한 ‘빙산의 일각’이었기 때문에 검찰 수사를 통해 무엇이 얼마나 더 드러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용감’했던 그 칼럼은 여권이 <조선>을 통해 검찰에 보내는 신호였을까요?

이후 <조선>은 검찰 수사에 또한번 재를 뿌립니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로 한 2013년 6월14일에 하루 앞서 수사결과문을 통째 입수한 뒤 발표 당일 아침 신문에 ‘검찰이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적용한 글은 겨우 67개’라고 보도한 것입니다. 검찰이 침소봉대한다는 뉘앙스였습니다.

채 총장은 “이제껏 그렇게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후배들이 전할만큼 격분했습니다. <조선> 보도대로 발표할 수 없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 게시글을 더 찾아내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수사팀은 발표 직전 게시글 수를 67개에서 73개로 늘려 <조선> 보도를 오보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채 총장은 자료 유출자를 밝히겠다며 대검 감찰본부에 특별감찰도 지시했습니다. 대검 감찰본부는 국정원 사건을 지휘한 대검 공안2과장을 조사하고 그의 컴퓨터까지 털어갔습니다. 감찰본부에 의해 안방이 털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공안부는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습니다. 채 총장과 공안부의 관계를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이후 대검은 비공식적으로 “검찰에서 정보가 새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여러 버전의 보고서가 있었다. <조선>에 보도된 보고서가 어디에 보고된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나 법무부에서 자료를 흘렸다는 점을 암시한 겁니다. <조선>은 2013년 9월 ‘채 총장에게 숨겨둔 혼외아들이 있다’고 보도해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며 대미를 장식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원세훈을 구속시켜라”

2013년 5월말, 채 총장과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갈등은 수면 아래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6월2일 저녁, 이들의 갈등이 외부로 살짝 모습을 드러냅니다. ‘원 전 원장이 중소 건설업체로부터 수천만원에 이르는 금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해 수사중’이라는 ‘SBS’의 단독 보도가 그 예입니다. 원 전 원장은 댓글 공작을 지시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였는데 뇌물 혐의가 난데없이 툭 불거져나온 겁니다.

훗날 드러난 사정은 이렇습니다.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원 전 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요구를 황 장관이 거부했습니다. 채 총장은 전국 특수부 중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원 전 원장을 샅샅이 뒤져 구속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선거법을 적용하되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다른 범죄 혐의로라도 원 전 원장을 구속하려했던 겁니다. 결국 원 전 원장은 댓글 사건과 무관한 특가법의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도 기소돼 1년 2개월간 감옥살이를 한 뒤 지난해 9월 만기 출소했습니다. 이 대목은 지금도 ‘채 총장이 무리했다’는 비판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단독보도를 했던 SBS 기자는 “당시 상황에서 원 전 원장을 개인비리 혐의로 수사한 것은 ‘갈등’이 아니라, ‘타협안’에 가까웠습니다. 이 사건 수사를 놓고 ‘채동욱 총장이 무리했다’라고 보는 것은 사태를 오히려 거꾸로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의견을 주셨습니다. 기자의 시각에 동의합니다. 다만 검찰 일각에서는 채 총장이 ‘그런 방식으로 타협’한 것에 대해 ‘채 총장이 무리했다’는 비판이 있다는 취지로 쓴 글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황 장관과 채 총장의 갈등은 앞서 보여드렸던 2013년 6월3일 <한겨레> 기사로 공식화됩니다. 황 장관은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검찰의 의견을 2주 가까이 받아들이지 않고 뭉갰습니다. 이른바 ‘미뤄 조지기’입니다.

원칙적으로 피의자에게 어떤 죄목을 적용할지,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등은 검찰이 결정합니다. 검찰이 주요 사건을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할 의무는 있지만 ‘지시’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기 때문입니다. 즉, 법무부는 ‘듣는 귀’만 있을 뿐 ‘말할 입’은 없는 구조입니다. 다만 검찰청법이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해 예외적으로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인정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이 검찰청법상 수사지휘권을 활용하지 않는다 해도, 현실적으로 검찰총장이 청와대의 뜻인 법무부 장관의 의중을 거스르긴 매우 어렵습니다. 당시 채 총장이 황 장관의 뜻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움직였다면 바로 사표를 썼어야 했을 겁니다. 채 총장은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보고 최대한 법무부(즉, 청와대)를 설득하기 위해 시간을 보낸 겁니다.

검찰은 법무부로 주구장창 보고서만 올려야했습니다.(*‘보고’ 받는 권한만 있기 때문에 법무부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때까지 끊임없이 ‘재보고’ 지시를 내리곤 합니다.) 선거법의 공소시효 만료일(6월19일)은 재깍재깍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결국 선거법 위반 혐의는 적용하되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정리됐지만, 법무부의 수사 방해는 이후로도 은밀하고 지능적으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선거법은 적용됐다, 채동욱을 날려라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원 전 원장이 기소되자 서초동 법조타운 주변에서는 ‘채 총장이 곧 날아갈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정체 모를 한 시민단체는 대검 앞에서 채 총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채 총장은 ‘혼외 아들 의혹’이 보도된 뒤 사상 유례없는 법무부 감찰을 받고 쫓겨납니다. 이때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했던 곽상도 수석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뒷조사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훗날 서울 서초구청 임아무개 과장(감사담당관)이 채 전 총장 ‘혼외 아들 의혹’과 관련해 개인정보를 유출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임 과장은 곽 수석과 함께 근무했던 적이 있어서 곽 수석이 채 전 총장의 개인정보 유출에 직접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번졌습니다. 당시 임 과장은 <한겨레> 기자와 만나 “곽 수석과 연락하고 지내지 않는다”며 연관설을 부인했습니다.

조선일보 2014년 4월 24일 1면. 화면 갈무리
조선일보 2014년 4월 24일 1면. 화면 갈무리

검찰은 곽 수석이나 이중희 민정비서관이 2013년 6월께 평소 친분이 있던 임 과장을 통해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 열람을 부탁한 게 아닌지 의심했지만 끝내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겨레>가 2013년 6월1일부터 30일까지 임씨의 통화 기록을 확인해본 결과, 6월28일 오후 5시32분 이중희 비서관에게, 이틀 뒤 오전 8시8분에는 곽 수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습니다. 어떤 내용을 주고 받았던 걸까요. 당사자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곽 수석은 특별수사팀 검사에게 전화해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도 받았습니다.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2013년 6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2013년 5월 하순,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들이 저녁 회식을 하는 자리에 전화가 걸려왔다. 검사가 전화를 받았고, 상대방은 곽 수석이었다. 휴대전화 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검사들이 다 들을 수 있었다. 요지는 ‘너희들 뭐하는 사람들이냐, 도대체 요즘에 뭐하는 거냐, 이런 수사를 해서 되겠느냐’고 힐난하고 빈정대는 것이었다”고 폭로했습니다. 당시 곽 수석은 신 의원의 폭로 내용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곽 수석은 당시 검찰 고위 인사에게도 전화를 걸어 ‘당신 뜻도 선거법 위반 적용인가’라고 따지듯 묻기도 했습니다. 수사팀 중 일부는 곽 수석 등의 지나친 수사 방해에 나름(?)의 방식으로 격렬하게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서일까요? 곽 수석은 최근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에 내정됐습니다.

“선거법 100% 무죄다” 떠들고 다닌 수사 지휘자

검찰 내에서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자고 주장한 대표적 인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이진한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였습니다. 그는 내부 회의에서 ‘선거법 적용은 무리’라는 의견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공공연하게 ‘선거법 위반 혐의는 법원 가면 100% 무죄’라고 얘기하고 다녀 빈축을 샀습니다.

2013년 9~10월께 국정원 직원들의 광범위한 트위터 계정을 확인한 수사팀이 국정원 직원 3명을 체포해 조사한 뒤 수사를 확대했습니다. 이때도 이진한 2차장은 어깃장을 놨습니다. 추가로 국정원 직원 4명을 불러야 했는데 ‘국정원과 사전에 직원들의 출석을 조율하겠다’며 20여일 동안 소환 조사를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이들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진술을 짜맞출 수도 있었기 때문에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수사팀이 조사를 서둘러야 한다며 재촉한 끝에 11월7일에야 국정원 직원 4명을 불러 조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진한 차장 외에도 공안부 소속 검사들의 반발 기류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특히 1심 법원이 원 전 원장 등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공안부 소속 검사들을 중심으로 항소 포기 여론이 일었습니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검찰이 총의를 모아서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도 아닌데 왜 항소를 해야 하느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완전히 엉터리인데, 일단 검찰의 이름으로 기소를 한 이상 그것은 누군가의 의견이 아니라 검찰의 입장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항소를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이례적으로 공소심의위원회까지 개최한 뒤 항소를 했는데, 그러면서도 “선거법 위반 무죄에 대해 항소할지 여부는 공심위 내에서 이견이 있었다”며 뒤끝을 남겼습니다.

석연찮은 화재, 관련 기록 사라져

수사 대상자인 국정원의 어깃장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서는 국정원이 나서서 채 총장의 혼외 아들 관련 뒷조사를 벌인 행태만 언급하겠습니다.

국정원은 검찰이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자 채 총장 뒷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채 총장 혼외 아들의 개인정보를 빼낸 혐의로 수사를 받은 국정원 직원 송주원씨는 검찰 조사에서 “2013년 6월 초 한 식당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고 있는데 채 전 총장의 혼외 의심 아들 채군의 이름과 학교·학년을 우연히 들었다. 평소 채 총장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를 음해하는 소문이 나돌면 국가적으로 안 좋을 거 같아 확인하려고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는 법원에서도 판사가 “(화장실에서 우연히) 잠깐 들었는데 어떻게 그 내용을 정확히 기억했느냐”고 묻자 “채군의 이름이 대학 때 알고 지낸 여학생 이름과 같아서 확실하게 알아들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식당이 어디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습니다.

국정원을 둘러싼 수상쩍은 일은 또 있습니다. 원 전 원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 사흘 전인 2013년 6월11일 서초구청에서 채군의 정보가 유출됐습니다. 국정원 직원 송씨는 이날 서초구청으로부터 약 600여m 떨어진 중국식당에서 본인 명의 카드로 7만5000원 밥값을 계산했습니다. 검찰은 송씨를 포함해 세명 정도가 식사했고, 이 자리에 동석한 사람에게 송씨가 채군의 개인정보 확인을 부탁한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동석자 파악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집 주인은 “2013년 8월11일~12일 식당 주방에서 발생한 화재로 CCTV를 교체해 6월11일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예약자를 확인할 수 있는 영업장부도 화재로 분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역사는 항상 시간 앞에선 무릎을 꿇는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원 전 원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반대하고 어깃장을 놓은 세력은 너무 많아 여기에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지경입니다. 법률가적 양심에 따라 ‘선거법 적용은 무리’라고 판단한 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권에 부담을 줘선 안 된다’는 정치 논리를 앞세운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법원의 한 고위 인사는 특별수사팀이 한창 수사를 하고 있을 때부터 ‘저 사건은 법원에 넘어오면 무죄가 난다’고 말하고 다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재판도 하기 전에 법원이 저러는 게 어딨느냐. 만나서 잘 설명을 하라’고 채 총장이 당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지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법원 고위 인사는 그 뒤 행정부의 고위 관료로 발탁됩니다.) 각계각층에서 때론 지능적으로, 때론 막무가내로 정권 옹호를 위해 몸을 던졌습니다.

지난 9일 서울고법이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자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가 이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역사는 항상 시간 앞에선 무릎을 꿇는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공은 이제 대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원 전 원장이 구속돼 있기 때문에 늦어도 6개월 안에는 결론이 나올 겁니다.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정치 논리’가 아닌 ‘법의 논리’로 결론이 내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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