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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한국 개미는 왜 공매도에 분노하나…‘금지’ 둘러싼 쟁점

등록 2023-11-08 16:33수정 2023-11-08 20:04

더(The) 친절한 기자들
주가가 떨어져야 돈 버는 공매도

“외국인·기관에 기울어진 운동장”
“담보비율· 상환 기간 똑같이 하자”
코스피가 전날보다 16.26p(0.67%) 오른 2460.22로 시작한 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코스피가 전날보다 16.26p(0.67%) 오른 2460.22로 시작한 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요일이었던 지난 5일 금융당국의 한시적 공매도 금지 발표가 이뤄진 후 주식 시장이 연일 널뛰고 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갑작스러운 공매도 금지 발표에 따른 후폭풍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요동치는 증시 속에서 오랜 시간 공매도 금지를 외쳐온 개미 투자자들은 웃을 수 있을까요? 공매도는 어쩌다 개미 군단의 ‘공공의 적’이 된 걸까요?

주가가 떨어지면 돈을 버는 공매도

주식에 관심 없는 분들이라면 공매도라는 용어가 생소하실 겁니다. 공매도는 일반적인 주식 투자와 달리 주가가 떨어지는 데 돈을 거는 투자 기법입니다. 미래에 주가가 떨어질 거라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시장에 내다 판 뒤 주가가 내리면 다시 주식을 빌린 만큼 사서 갚아 차익을 얻는 방식입니다.

주가가 떨어지면 돈을 번다는 ‘원죄’ 때문에 공매도는 400여년 전 네덜란드에서 처음 고안된 이래 꾸준히 투자자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1400만명에 이르는 2023년의 한국 개미들에게도 공매도는 공공의 적인 듯합니다. 개미들은 공매도가 주가 상승을 억누르고 주가를 과도하게 끌어내리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의심합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앞)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뒤)이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금융위원회를 마친 뒤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앞)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뒤)이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금융위원회를 마친 뒤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개미들 “외국인·기관에 기울어진 운동장”

학계에서는 이 같은 의심은 의심일 뿐이라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의심을 해소해주지는 못했습니다. 막강한 자본력과 정보력으로 무장한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공매도를 주도하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올해 1월2일∼11월2일 국내 증시 공매도 누적 거래액 158조5천억원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7%에 불과합니다. 외국인이 67.9%, 기관이 30.4%로 함께 98.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와 기관·외국인 투자자 간 공매도 거래 요건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도 개미들의 의심을 키우는 요인입니다. 공매도를 하려면 우선 주식을 빌려야 하는데, 주식을 빌리려면 담보가 필요합니다. 주식, 채권, 현금 등을 빌리려는 주식 대비 일정 비율 이상 갖고 있어야 공매도를 위한 주식 차입이 가능한데, 이 비율이 개인은 120%인데 반해 기관과 외국인은 105%입니다.

예를 들면, 개인은 2천만원을 담보로 1억원어치 주식을 빌릴 수 있지만, 기관과 외국인은 500만원만 있어도 1억원어치 주식을 차입해 공매도에 나설 수 있습니다. 공매도한 주식을 다시 갚아야 하는 기한도 개인은 한 번에 최장 90일로 제한되지만, 기관과 외국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제한이 없습니다. 주가가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팔면 되니 기관과 외국인이 더 유리하다는 불만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기관과 외국인이 불법 공매도를 관행처럼 일삼는다는 의심도 개미들이 공매도 금지를 외치는 이유입니다. 공매도에는 합법과 불법 공매도가 있습니다. 주식을 먼저 빌린 뒤 파는 ‘차입 공매도’는 합법입니다. 그러나 주식을 빌리기도 전에 갖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팔겠다고 주문을 넣는 ‘무차입 공매도’는 불법입니다.

어떻게 갖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팔 수 있냐고요? 주식을 팔겠다는 매도 주문은 증권사가 접수하고 한국거래소가 처리합니다. 그런데 증권사도 거래소도 주문자가 주식을 빌리고 주문을 내는 건지 빈손으로 주문을 내는 건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길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주식을 차입하는 대차거래 기록은 예탁결제원 등이 들고 있는데, 매도 주문을 처리하는 증권사·거래소와 예결원 간 전산이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나마도 예결원이 확인할 수 있는 건 국내 일부 기관투자자의 대차거래 정보뿐입니다. 국내 공매도 거래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는 예결원 대신 에퀴랜드(Equilend)라는 민간 회사에 대차거래 정보를 보관합니다. 금융당국이나 국내 증권사가 이 회사에 요청하면 차입 거래 여부나 규모를 확인할 수 있지만,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산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하루 최소 수백건에 이르는 공매도 주문에 상응하는 대차거래 내역을 일일이 요청해 확인하고 매도 주문을 내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당국과 증권가 설명입니다. 외국인이나 기관 투자자의 경우 빈손으로 매도 주문을 냈다 하더라도 실제 결제가 이뤄지는 거래일 후 2영업일 안에만 주식을 빌리면 감쪽같이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와 회원들이 공매도 상환기간 90~120일 통일, 무차입공매도 적발시스템 가동, 시장조성자 퇴출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와 회원들이 공매도 상환기간 90~120일 통일, 무차입공매도 적발시스템 가동, 시장조성자 퇴출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담보비율· 상환 기간 똑같이 하자”

그런데 이런 ‘꼼수’는 개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개인은 공매도 거래 시 매도 주문을 내려면 사전에 팔려는 주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찰나의 시차를 활용한 차익거래인 공매도라는 게임에서 외국인과 기관은 더 잽싸게, 더 큰돈을 더 오랫동안 움직일 수 있는 셈이죠.

그래서 개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맞춰달라고 요구합니다. 담보인정비율을 개인과 기관·외국인 간 동일하게 130%로 통일하고, 대주시장과 대차시장을 통합해 상환 기간도 90∼120일로 똑같이 제한하자고 말이죠. 개인이 주식을 빌리는 시장을 대주시장, 기관·외국인이 주식을 차입하는 시장을 대차시장이라 합니다. 불법 공매도를 제때 적발할 수 있도록 매도 주문 전 주식 차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전산을 구축해달라는 것도 이들의 요구 사항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당국과 증권가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신용도나 자금 여력에 따라 개인과 기관·외국인 투자자를 차등 대우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대출 금리가 신용도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죠.

전산 구축을 두고는 당국 내에서도 입장이 갈리는 듯 합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앞서 국정감사 질의 과정에서 “증권사들이 공매도 주문을 넣는 외국계나 기관의 대차 현황에 대해 (전산을 통해) 파악한 다음에 주문하는 게 적절하다”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대차거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데, 거래 목적이 다르고 전화나 이메일을 이용해서도 주문이 들어오기 때문에 실시간 파악이 어렵다”며 “실시간 전산 구축이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외국에서도 안하고 있는 복잡하고 어려운 시스템을 도입해 거래를 복잡하게 하는 게 투자자 보호인지 자신이 없다”고 선을 긋는 듯한 발언도 했습니다.

공매도 금지, 총선 이벤트 안되려면

문제는 국제 증시와 달리 국내에서만 공매도를 금지하는 것이 기존에 제기돼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당국도 명확히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공매도를 금지하면 주가 변동성이 확대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외국인 투자자가 이탈하면서 주가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합니다. 이번 조처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이벤트라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다만 금융당국이 공식적으로 “불법 무차입 공매도 실시간 차단 시스템 구축 문제에 대해서도 대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번 한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가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는 않을지, 당국의 제도 개선 논의를 지켜봐야겠습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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