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황교안 신임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자료 미제출로 청문회 무력화
여야는 뒤늦게 법개정 착수
여야는 뒤늦게 법개정 착수
‘찬성 156, 반대 120, 무효 2’.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 뜬 찬성표 수는 표결에 참석한 여당 의원 수와 정확히 일치했다. 18일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 28일 만에 ‘후보자’ 꼬리표를 떼는 순간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메르스 사태 장기화와 극심한 가뭄으로 국민 불안과 고통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정치 불안까지 더해 드릴 수 없다”(박수현 원내대변인)는 이유로 임명동의안 투표에 참여했지만, 황 후보자가 부적격이란 판단은 거두지 않았다. 야당의 부적격 판단은 황 총리가 자초한 바다. 앞서 인사청문회에 섰던 다른 후보자들도 자료 제출이 미진하다는 지적을 받는 경우가 빈번했지만, 황 총리처럼 후보자 시절 내내 자료 제출 문제로 씨름을 벌인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자료 제출을 거부한 탓에 병역·납세·사면로비 등 황 총리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은 면밀한 검증의 시험대에 오르지 못했고, 그 결과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도 않은 상태로 총리 인준을 받게 됐다. 메르스라는 초유의 사태가 없었다면 야당이 임명동의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을 것이다.
황 총리는 후보자 지명 뒤 불거진 여러 의혹들에 대해 “청문회에서 모든 걸 밝히겠다”고 했지만, 정작 청문회가 시작되자 증거 자료를 제대로 내놓지 않은 채 “불법은 없었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국회 인사청문특위가 의결한 요구자료 32건 가운데 황 총리가 내놓은 자료는 20건에 그쳤다. 미제출 자료는 병역면제 사유인 만성담마진(두드러기) 관련 의료기록, 변호사 시절 수임내역, 가족간 통장거래 내역, 법무부 장관 재직 시 업무추진비와 특수활동비 집행내역 등 병역·전관예우·탈세·공직윤리 등 황 총리에게 제기된 의혹과 관련한 핵심 자료들이다. 황 총리는 자료 제출을 둘러싼 공방 과정에서 의료기록은 “갖고 있지 않다”, 수임내역은 “변호사법 위반이라 공개할 수 없다”, 가족간 통장거래 내역은 “사생활보호 조항으로 법적 제출 의무가 없다”는 논리로 방어막을 쳤다.
황 총리의 ‘버티기’는 ‘사면 로비’ 개입 의혹이 쟁점으로 떠오른 청문회 막판까지 논란이 됐다. ‘수임 의뢰인을 밝히라’는 요구에 황 총리가 “변호사법의 비밀유지 의무에 저촉된다”며 불응하자, 야당 청문위원들은 ‘수임액이라도 공개하라’고 물러섰지만 황 총리는 이마저도 “(당시 소속된 법무법인의) 영업기밀이라 안 된다”고 거부했다.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황 총리는 민감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알아보겠다”,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거듭했다.
야당 청문위원들 사이에선 “검찰 출신인 황 후보자가 ‘증거가 없으면 무죄’라는 증거재판주의를 공직자 검증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청문위원은 “황 총리가 청문회를 준비하고 임하는 태도는 ‘혐의 입증의 책임은 혐의를 제기한 쪽에 있다’는 형사법 논리의 연장”이라며 “이후 지명될 총리와 장관들이 이런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청문회 자체가 유명무실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야당은 이번 황 총리 사례가 국회의 검증을 피해 가려는 공직후보자들에게 일종의 ‘청문회 교범’처럼 활용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인사청문회법과 국회 증언감정법, 변호사법 개정을 야당이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공직후보자들이 황 총리의 사례를 답습하는 것을 막으려면 인사청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야당이 마련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에는 공직 후보자가 최근 10년간의 금융거래와 국민연금 납부 내역, 병역 의무 이행 검증을 위한 의료기관 진료 내역 등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으면 청문회가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회 증언감정법과 변호사법도 공공기관이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국회에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신설했다. 새누리당은 인사청문 제도 개선에 동의하면서도 개선 방향에 대해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소극적인 자세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여야 합의로 운영하기로 한 인사청문개선소위와 관련해 “새누리당은 여전히 검증의 실효성을 강화하려는 데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며 “새로 만들어질 법안이 제대로 된 인사청문회를 보장할 수 있으려면 국민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느냐가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세영 이정애 이승준 기자 monad@hani.co.kr
황교안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표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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