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노무현 정부가 안보문제를 정치문제화하고 있다. 반미·반동맹에 자주라는 외피를 입혀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행사하자는 시도는 진정한 자주국방의 길이 아니다.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추진을 통해 대북전쟁 억지력의 확실한 근간인 한미연합사 체제를 해체하는 것은 안보 악화와 함께 미국과 일본에 대한 군사적 종속을 초래할 수 있다.… 적어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 정책으로 나와 남북 간의 평화체제 구축의지를 분명히 할 때 이 문제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 전시작전통제권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
5일 한 신문이 인용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는 지식인 1000명 공동선언’의 일부다. 안보문제를 정치문제화하고 있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이 선언을 주도한 쪽이라는 주장도 성립 가능하다. 선언의 논리에 그대로 따르면 ‘진정한 자주국방의 길’은 작통권을 미국에 맡기고 미국과 일본에 군사적으로 종속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길이다. 따라서 작통권 단독행사가 “미국과 일본에 대한 군사적 종속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표현이다. 우려할 일이 아니라 환영해야 할 일 아닌가? 하지만 더 종속당할 그 무엇이 남아 있기나 한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 정책으로 나와 남북 간의 평화체제 구축의지를 분명히 할 때’에만 작통권 단독행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과, 작통권 단독행사를 통해서 비로소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 정책으로 나와 남북 간의 평화체제 구축의지를 분명히 하도록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주장중 어느 것이 옳은지 양자택일식으로 가를 자신이 있는가?
선언이 그리고 있는 안보구상의 요체는 한-미-일 삼각동맹 복원과 확대재생산이다. 작통권 환수를 비롯한 노무현 정권의 안보정책에 대해 선언이 ‘반미·반동맹에 자주라는 외피’를 입힌 일종의 사기극으로 매도하며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그것이 전후 60여년간 한반도와 주변질서를 결정지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해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선언을 발표한 쪽은 한-미-일 삼각동맹이 한민족에게 안정과 번영을 가져다 준 절대적 선이라는 생각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렇게 읽힌다.
그러나 그것은 일면의 진실일 뿐이다. 미국과 일본이 한반도를 사실상 지배한 지난 백여년간 한민족은 수백만명이 죽임을 당하고 반세기 가까이 식민지로 전락했다. 국토와 핏줄이 부당하게 분단당했다. 한민족은 대륙을 잃어버렸으며, 유사 이래 가장 파괴적이고 비극적인 전쟁을 겪었다. 동포들이 천지사방으로 흩어지고 치욕과 자기모멸속에 사대의식은 체질화했으며 끝없는 동족 대결은 민족내부 에너지를 무한대로 고갈시키고 있다. 동맹의 변방에서 중심부를 지향하면서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쪽은 민족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 사실왜곡일까.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보면 한민족은 오늘날 공통의 언어와 가치, 문화를 공유한 하나의 민족집단이라는 측면에선 유사 이래 최대의 생존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태에서 누가 이득을 향유하고 있는가. 주변 대국들과 그들의 동맹세력. 이런 상태가 앞으로 반세기만 계속된다면 한민족은 아마 국제무대에서 의미있는 정치문화집단이기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냉전붕괴와 중국의 재생, 그리고 한반도 내부변화로 지난 1세기간 한반도와 그 주변을 좌우해온 삼각동맹 질서의 해체나 재조정이 불가피해졌다. 한줌의 동맹 수혜자들은 그런 변화를 거부하면서 자신들이 ‘선’의 대변자인양 행세한다.
세상의 변화란 선도 악도 아니며 세력간 싸움의 반영일 뿐이다. 한-미-일 삼각동맹 수혜세력, 그리고 그것을 바꾸고자 하는 세력간의 싸움. 비전을 지닌 쪽이 승리할 것이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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