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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자주국방 물러가라’는 식민지 우화

등록 2006-08-10 16:35수정 2006-08-11 14:16

한승동의 동서횡단

“1994년부터 시작된 미-일 안보 재정의의 의미에 대해서 말레이시아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노르딘 소피 소장은 ‘미-일 안보 재정의가 세계에 표명한 메시지는 명쾌하다. 그것은 냉전 후에도 일본이 미국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소피 소장의 지적이 없더라도 미국의 전략은 명백하다. 장차 중국의 대두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리고 일본을 계속 틀어쥐기 위해서도 ‘미-일동맹 강화’ 조처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그러나 일본이 안보 재정의에서 총리를 중심으로 냉전 후의 새로운 정세를 분석하고 국익을 재검토하고 전략을 세워서 미국과 협상했는가 하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의 전략에 그대로 따라갔다.”

소토카 히데토시 등 <아사히신문> 기자들이 쓴 <미일동맹-안보와 밀약의 역사>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이 마무리된 시기가 2001년 여름. 그해 가을의 ‘9·11사태’ 이후 세상은 다시한번 크게 변했고, 일본은 ‘미국의 손바닥 안’으로 더욱 깊숙이 말려들어가고 있다. 양국은 지난 5월 외교안보협의(2+2)에서 미 육군 제1군단 사령부를 일본 자마기지로 이전하는 등 양군의 통합·일체화를 가속화하기로 했다. 마침내 자위대가 중동에 파병되기까지 했다.

소토카 등은 이런 사태전개가 몹시 불안하다. “미-일 안보 재정의 과정에서 분명해진 것은 일본이 냉전 뒤에도 미국에 대한 전면적인 의존체질을 탈피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일본에게 단연코 위험한 길이다. 자국의 미래에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자국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통행증’을 가지고 새로운 일본의 역할을 생각하고 그에 따라서 미-일 안보의 방향을 미국과 함께 협의해야 한다. 동맹 반세기를 맞이한 지금 일본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미-일 안보 재정의’를 위한 재출발일 것이다.”

한국은 ‘자신의 통행증’을 갖고 있는가? 그나마 일본은 우익 지배세력의 농간과 공세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헌법 9조’가 미국 전횡에 대한 견제장치로 기능한다. 이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우익이 헌법개정에 광분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 있다. 전시작전지휘권도 없는 주제에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마저 덜컥 합의해준 한국의 통행증은 누가 발급해주고 있나.

전시작전지휘권 환수 문제를 두고 이 나라가 과연 주권국인지 의심케하는 작태들이 난무하고 있다. 나라 안팎의 유명논객들 중엔 심지어 이 첨단시대에 ‘자주국방’하는(‘하지 못하는’이 아니다!) 못난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 있느냐는 기상천외한 말까지 버젓이 쏟아놓고 있다. 자주국방이야말로 건강한 동맹의 기초 아닌가? 일본이 부러운 모양이다. 일본이야 그렇게 해서 반세기 넘게 전쟁범죄도 숨기고 호가호위 해왔으니, 지금의 혼돈기에 다시 미국 품에 안기자는 건 이해할 순 있겠다. 그럼에도 그게 ‘단연코 위험한 길’이라고 저자들은 경고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길에 목숨걸 이유가 있을까? 천만 이산가족 눈물속에 반쪼가리 섬같은 땅에서나마 안주하며 남의 통행증으로 떡고물 받아먹고 산 세월이 그렇게도 그리운가? 1급 통행증 받은 특권층이야 그럴 수도 있겠다.

봉준호의 <괴물>은 절묘한 21세기형 식민지 우화다. 거기 나오는, 노란색 방호복에 마이크 들고(그냥 육성이 더 잘들리는데도) 수용시설에 나타나 설쳐대는, 설명은커녕 상황파악도 못하면서 지시받은대로 감염의심자를 마구잡이로 붙들어가도록 현장지휘하는 사나이. 즐비한 제나라 백성 피해보다 종주국 시민에게나 신경쓰는 알량한 언론. 그리고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으면서 제 잇속 차리기에나 빠른 비전없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관료적 군상들. ‘자주국방’ 포기하자는 게 설마 그러자는 건 아니려니.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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