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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주한미군 후방 빼고 FTA 전방배치?

등록 2006-06-29 19:09수정 2006-06-30 16:44

한승동의 동서횡단

“오키나와가 있기에 (일본)본토는 평화헌법을 향유할 수 있다. (군대보유와 교전권 포기를 규정한 헌법) 9조를 지키자는 본토의 운동조차 오키나와 기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안주해왔던 것 아닌가?”

오키나와의 한 원로 언론인이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키나와. 19세기 후반까지도 독립 류큐왕국이었으나 메이지 정부 때 일본에 복속당한 뒤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일본 본토진주 저지를 위한 최전선이 돼 80여일간 20여만명이 숨진 곳이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오키나와 주민들이었고, 이후 지금까지 미군기지가 뒤덮고 있다. 흔히 주일 미군기지로 통칭되지만 정작 주일 미군기지의 75%는 일본영토의 0.6%에 불과한 이곳 오키나와에 집중돼 있으며, 외국군 주둔이 야기하는 피해와 부담은 일본본토가 아니라 오키나와가 다 짊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평화헌법 수호를 부르짖으면서도 오키나와 미군기지 철수엔 무관심한 본토인들의 운동이 오키나와인들에게 위선으로 비치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지난 23일이 61년 전의 오키나와 비극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의 날’이었다.

오키나와 일은 먼나라 얘기가 아니다. 한국이야말로 또 하나의 오키나와일 수 있기 때문이다.

1950년 1월12일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미국신문기자협회 연설에서 미국의 태평양지역 방위선을 알류산열도와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고 말했다. 한반도를 명시적으로 포함시키지 않은 이 ‘애치슨 라인’이 한국전쟁을 유발했다느니 논란도 많았는데, 이제 와 생각하면 당시 미국 지배그룹의 세계인식 수준과 가치관을 고려하면 당연지사였을지도 모른다. 독일을 분할점령하고 일본 역시 분할지배하기로 얄타에서 밀약한 미국 소련이 정작 일본본토가 아니라 한반도를 동강냈고, 남쪽을 점령한 미군이 주권자로 군림한 것은 한반도가 본래부터 일본영토의 일부였던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애치슨 라인이 지목한 ‘일본’속에는 남한땅도 당연히 포함되는 걸로 애치슨 등 미국 나으리들이 착각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냉전의 설계자 조지 케넌 미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조차 당시 일본의 영역이 남한땅을 넘어 한반도 전체와 만주까지 뻗칠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 ‘남한’이라는 이름의 일본땅에 ‘조선’이라는 이방의 군대가 밀고내려왔으니 미국이 ‘애치슨 라인’ 즉 미국 방위선 지키기에 나선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 뒤 ‘망언’이 속출한 굴욕적인 한일국교 정상화 협상이나 일본제국군 하급장교 출신자의 쿠데타와 집권은 미국인들을 더욱 헷갈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예전부터 미국 우파들이 수틀리면 주한미군 빼내가겠다고 남한 정부를 협박해댄 것도 ‘남한=일본’이란 착각 탓이 아니었을까.

‘일본을 지켜라!’가 주임무의 하나였던 동아시아주둔 미군이 어디에 집중배치됐던가? 일본의 변방 오키나와, 그리고 남한땅이었다. 남한땅이 일본영토가 아니라는 생각이 미국 관리들의 머리를 확실히 잠식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말 이후 한국 민주화시민혁명이 본격화한 이후의 일이 아닐까. 그래서 그 무렵부터 자신들의 동아시아전략을 빗나가게 만든 이른바 한국 운동권 시민들을 ‘버릇없는 놈들’이니 ‘들쥐’니 하며 씹어댔던 것이고…. 상상이 지나쳤나.


최근 소위 ‘북핵’문제로 북핵시설 선제폭격을 주장한 미국내 실력자들이 그렇게 해도 남한에 의존적인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렇다면 미군의 남한 주둔 명분(남침저지)도 일찌감치 사라졌다는 걸 자인한 셈 아닌가. 미군, 이젠 철수할 때가 됐나. 그래서 ‘전략적 유연성’이니 FTA를 오히려 서두르는건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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