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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기득권자들의 ‘사다리 걷어차기’

등록 2006-07-27 20:17수정 2006-07-28 15:35

한승동의 동서횡단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서기 1984년은 지나갔지만 조지 오웰의 <1984년>이 발하는 경고는 인류역사가 존속하는 한 유효하다. 의식과 가치가 전도된 그 불길한 세월은 2084년이 될 수도 있고 2984년이 될 수도 있다. 아니 바로 지금이 그런 시대인지도 모른다.

한때 미국 비판은 반미, 반미는 좌파, 좌파는 친북 따위의 이상한 언어유희가 난무했다. 최근에는 민족공조는 반동맹, 반동맹은 친북친중이 유행하는가 싶더니 다시 또 한가지 유행이 나타났다. FTA는 개방, 반FTA는 쇄국.

이 단순무비의 억지대립항들이 일방적으로 흐르는 대형 선전미디어들의 광기에 올라타면 삽시에 대중의 의식을 지배한다. 이미 사라졌다는 ‘저기 가는 저 아저씨 간첩인가 다시 보자’ 시대의 ‘반공’포스터에나 어울릴 조어법이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왜 미국의 특정 정책들에 대한 반대가 반미인가? 미국 비판이지만, 설사 반미라 한들 왜 반미하면 좌파인가? 우파는 미국 비판하면 안되나? 아니 우파는 반미 안하나? ‘노,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부르짖으며 미국에 대들었던 일본극우 이시하라 신타로는 그러면 반동맹 좌파인가?

왜 민족공조하면 반동맹인가? 미국 일본 집권세력의 특정정책을 비판하면 반동맹이고 한·미·일공조 파기인가? 민족공조하면서 동맹도 하고 한·미·일 공조도 필요한 만큼만하면 안되나? 한미FTA 반대가 FTA일반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는 건 피차가 다 안다. 한미FTA 하지 않은 대한민국이 쇄국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쇄국커녕 몇 가지 빼놓곤 더 개방할 것도 없으리만치 나라 문 거의 다 열어놓은 상태 아닌가? 무역의존도가 70%가 넘고 수백만명이 외국을 넘나들며 기업과 주식시장 알짜배기 지분을 외국자본이 잠식하고 있는 나라에 무슨 놈의 쇄국타령인가? 미국하고 자유무역협정 하지 않으면 쇄국인가? 한미FTA 반대가 당장 미국과 문닫고 국교를 단절하고 수출입도 중단하자는 얘긴가?

이런 식의 언쟁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건 저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식의 조어가 말이 안된다는 것도. 잘 알면서도 그런 저차원의 억지를 부리는 건 그게 자신들에게 이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정책에 대한 비판을 이상주의자들의 철없는 짓으로 매도하는 ‘현실주의자’들은, 그래서 미국 일본 없이 과연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다그친다. 말하자면 그들의 ‘현실주의’란 ‘힘 없으면 찍소리 말고 힘센 놈 시키는대로 따라가는 게 떡고물이라도 얻어먹는 법’ 수준이다. 가진 것 없는 놈이 웬 실속없는 헛소리냐는 거다. 이게 민족공조를 동맹의 발가락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미국 비판을 반미로 알며, 반미를 친북으로 보고 한미FTA가 쇄국 물리치는 민족해방의 길이라도 되는양 여기는 자들 세계관의 출발점이다. 지난 1세기 동안 줄기차게 그랬으면 이젠 신물날 때도 됐건만.

미국비판, 민족공조야말로 철저히 이익여부를 따진 냉정한 현실주의적 계산끝에 나오는 것 아닌가. 기회는 강자들의 속내와 장단점을 살피고 틈새를 노리며, 때론 이의제기하고 반격하면서 냉정하게 계산하는 자에게 오는 법이지 마냥 대국 만세 부르며 따라가기만 하는 자에게 오지 않는다. 만세만 부르자는 자는 멍청하거나, 기존질서나 체제 유지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치고 있는 자다. 그들에겐 기존 틀과 어긋나는 모든 주장과 이견은 불안하며 기분나쁘고 철없는 짓이다. 기득권을 위협하는 불온한 짓은 무조건 깔아뭉개야 한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 식으로 말하면 그게 바로 경쟁의 사다리를 먼저 올라간 자들의 야비한 ‘사다리 걷어차기’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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