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패전 뒤에도 중국과 동남아는 포기하더라도 한반도와 만주는 일본이 언젠가는 다시 지배할 수 있기를 꿈꿨던 영원한 ‘대동아공영권’ 신봉자 기시 노부스케. 그는 한반도 남쪽 해안지대만이라도 일본이 관세 따위의 장벽없이 내국처럼 거래할 수 있는 지역으로 남기를 고대했다고 한다. A급전범으로 처형을 극적으로 면한 뒤 자민당 장기집권체제의 토대가 된 55년 보수합동을 주도했고, 헌법개정을 통한 일본재무장에 정치생명을 걸었던 그는 차기 일본총리로 거의 확정적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 외할아버지다.
한반도 남부 해안지역을 읊조릴 때 기시의 뇌리에는 아마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날조된 임나 일본부 신화가 아른거렸을 것이다. 자의적인 영토분할 지배는 제국주의자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들은 원주민들의 삶과 문화의 통일성, 그들이 사는 지역의 역사나 상호보완성 등에 개의치 않고 자신들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땅을 갈라버린다. 지도를 펼쳐놓고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그 많은 나라들 국경선을 대충 한번 살펴보라. 자연·문화 조건을 깡그리 무시한 듯한 기하학적인 직선과 곡선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한반도 남부만이라도 일본쪽에 붙이고 남해와 대한해협을 일본 내해로 삼고자 했던 기시의 머리속에는 일본의 영광만 있었을 뿐 그로 인한 한반도의 분열과 주민들 고통은 아예 개념조차 없었을 것이다.
미국이 소련과 짜고 한반도 위에 그어버린 북위 38도선이라는 직선도 그런 횡포의 전형이다. 어쨌든 그 결과 기시의 꿈은 미국이 대신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준 셈이 됐다. 한국에서 민주화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반도 남부를 통치한 것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 출신의 일제 관동군 장교를 정점으로 한 군국일본의 후예들이었으며, 미국이 압박한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한일간 정권유착은 오래 지속됐다. 일본자본의 자유활동을 보장한 마산수출자유지역이 기시를 만족시켰을까.
8.15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만일 중국과 일본이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강행이 상징하는 일본 지배세력의 퇴행적 전략에 반발해 장차 대일 공동전선을 편다면? 그리하여 동북아시아에 일본-미국의 해양세력과 남북한-중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합세한 대륙세력간의 대립구도가 자리잡는다면?
아마 고이즈미는 그래도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메이지 유신 예찬자인 그로서는 일찌기 후쿠자와 유키치가 외쳤던 ‘탈아입구’의 성공을 거기서 다시한번 예감했을지 모른다. 이번엔 수정판 ‘탈아입미’다. 그러나 미-일동맹이 나머지 모든 동북아 대륙국가들을 뭉치게 만들고 그들과 대결하게 만드는 해양-대륙 세력 대치 단일전선 구도로 내닫게 만드는 쪽을 미국이 선택할까? 미국이 한반도와 중국 이권을 포기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남한이 미-일동맹에 가담하고 중국-북한-러시아 진영과 대립하는 과거 냉전형 전선이 다시 강화된다면 사정은 달라질지 모른다. 모든 부담은 한민족이 떠맡고 주변국들은 최소한 현상유지가 보장해주는 안정적 이득을 계속 향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이즈미는 아마 후자의 가능성을 더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게 훨씬 더 현실적이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따위를 둘러싼 남한내 논란은 그의 선배 기시의 꿈이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는 명백한 증거로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한반도 남부는 결코 미국 일본의 자장권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그는 한국내 ‘남남대결’에서 재확인했을 것이다. 외세가 갈라놓은 분단선 북쪽의 동족보다 외세를 더 신뢰하는 한 기시의 소망은 이어질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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