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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1931년 이후 전범만 문제삼는 일본

등록 2006-08-24 17:15수정 2006-08-25 14:44

한승동의 동서횡단

“군의 힘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던 만주사변 시점에서 미디어(언론)가 결속해서 비판했다면 그 뒤의 폭주를 저지할 가능성은 있었다.” 지난 19일 <아사히신문>이 인용한 <요미우리신문> 기사의 일절이다. <아사히>는 이날 사설에서 <요미우리>가 지난해 여름부터 1년간 연재해온 ‘쇼와전쟁’(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15년전쟁) 전쟁책임 규명작업을 높이 평가하면서 요미우리가 검증 총괄에서 이처럼 지적했다면서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밝혔다.

‘만주사변’이라면 1931년에 본격화된 일제의 만주침략을 일컫는 일본쪽 용어인데, 31년이면 일본이 1894년 청일전쟁 당시 조선을 전쟁터로 삼아 조선 내정에 개입해 동학농민군을 무차별 살륙하고 각지의 숱한 의병전쟁을 압살한데 이어 러일전쟁, 3.1운동을 거치면서 대규모 전쟁범죄를 거듭 자행한 지 한참 지난 시점 아닌가. 왜 하필 만주침략 이후인가?

물론 요미우리가 15일 사설에서 전쟁책임 검증 대상기간을 “1931년에 시작된 만주사변으로부터 대미·영·란(네덜란드) 전쟁의 종결까지”로 한정했다고 밝히고 있듯이 특정기간만을 대상으로 삼은 이상, 그 이전 범죄는 왜 문제삼지 않느냐는 비판은 괜한 트집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게다가 아사히 지적처럼 요미우리의 검증은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런 시도 자체가 최근 일본 분위기 속에서 보수신문으로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평가받을 만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아사히도 지적했듯이 요미우리는 ‘천황’의 전쟁책임을 따지지 않았으며, 헤아리기 어려운 피해를 당한 아시아 주변국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문제도 건성으로 넘어갔다. 15일 사설에서 요미우리는 “육군참모본부, 해군군령부 참모”들이 A급전범 이상으로 실질적 전쟁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그들중 다수가 “군사분쟁 확대·전쟁계속을 위해 상층부를 계속 압박하고 때로는 월권행위까지 저질러가며 300만 이상의 병사,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간 데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전후 편안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딱 한마디 덧붙였다. “물론 ‘쇼와전쟁’의 희생자는 일본국민만은 아니지만….” 중국인 희생자만 2천만이 넘는다는 그 전쟁에 조선인들은 얼마나 저항하고 또 동원당하면서 희생됐던가.

그러나 더 중요하고 더 본질적인 문제는, 왜 요미우리가 근대일본의 전쟁범죄를 문제삼으면서 그 시기를 쇼와시대(1926~89), 그것도 1931~45년만으로 한정하고, 아사히조차 거기에 군말없이 동의하느냐는 것이다. 근대일본의 전쟁범죄는 정한론을 앞세운 메이지시대 이래 45년 패전 때까지 일관되게 자행된 것 아닌가. 그리고 요미우리 논법대로라면, 31년에 언론 등의 비판으로 군부의 폭주가 요행히 저지당했다면, 그리하여 당시까지의 만주이권과 조선, 대만 식민지 확보에 만족했다면 일본은 중국 및 미국·영국과의 전면전을 피해가 지금까지 조선과 대만, 만주, 그리고 사할린과 홋카이도 북방섬들은 일본제국 영토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인데, 지나친 욕심으로 그 알토란들을 다 놓치고 말았는 것인가. 그래서 적절한 선에서 침략을 자제하지 못한 군부의 과오를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긴가.

일본 우익들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주변국들과의 갈등을 얘기할 때 주로 대중국관계만 문제삼는다. 한반도와 대만, 동남아 등은 거의 무시한다. 지한파 등 한국과 한국사람을 더 잘 안다고 주장하는 일본사람들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본 근대 전쟁범죄의 원형은 ‘쇼와전쟁’이 아니라 동학혁명과 의병전쟁을 유린하고, 조선왕실을 난도질하고, 나라안팎 독립투쟁을 잔혹하게 짓밟고 진행된 메이지시대의 조선식민화 과정·조선근대화파괴 과정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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