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2차대전 이후 거의 반세기를 끈 동서 냉전체제는 기실 미국과 소련이 세계분할지배를 위해 얄타에서 공모한 둘만의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 상생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었다고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갈파했다.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과 같은 사태를 관리하는 그들의 솜씨는 노련했다. 분할지배 구조를 무너뜨릴 정도의, 결국 서로 손해볼 서투른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이나 ‘68혁명’처럼 세상은 결국 그들의 계산대로만 굴러가진 않았으나, 최대이익을 보장하는 분할지배구도가 유지되는 한 그들은 ‘금도’를 지켰다. 강자들간의 냄새나는 속물적 ‘신사도’같은 게 바로 그런 것일 터이다. 사실 냉전이후와 같은 유일초대국식 유아독존체제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적당한 수준의 긴장을 끝없이 조성해냄으로써 모두가 끼어들어 한자리씩 차지한 채 누구도 파이를 독차지하지 못하게 하면서 암묵적 지분율에 따라 또박또박 제몫 잘라가도록 보장하는 완벽한 체제. 이 월러스틴적 강자들을 위한 이상향이 바로 한반도다. 냉전 붕괴 뒤 15년이 지났으나 이 곳만은 여전히 얄타체제 분할지배구도가 철저히 관철되고 있다.
이 엘도라도의 최대주주는 물론 미국이다. 2대주주는 중국. 배당율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으나 아직은 힘이 약하니 권토중래, ‘도광양회’할 수밖에 없다. 판을 깨는 것보다는 북한지분을 독점할 수 있는 분할지배쪽이 훨씬 유리하다. 못이긴 척 지긋이 참고 기다리면 된다. 제3의 주주는 일본. 미국만 따라가면 된다. 알짜배기 떡고물을 통째로 챙길 수 있다. 원래 참가자격을 박탈당한 일본을 끼워넣어 키운 건 미국이었다. “일본인의 영향력 및 그들의 활동이 다시 한반도와 만주에까지 확대되는 사태를 미국이 현실적인 입장에서 반대할 수 없게 될 날은 우리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다.” ‘냉전의 설계자’ 조지 케넌 당시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이 이런 보고서를 올린 것은 1949년이었다.
이 구도 위에서 일본은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던 고대 ‘임나일본부’를 21세기에 현실화하는 기적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이 보장하는 야마토 자본의 ‘남조선 경영!’ 일본 지배 우파세력의 영원한 꿈이다. 그들이 유독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 공유를 강조하고 ‘한-미-일 공조’와 ‘한-일 제휴’를 읊조리며 ‘한반도 남부’에 대한 스토커적 짝사랑을 과시하는 자신감도 거기에서 연유한다. 조금만 더 가면 ‘내선일체’다. 남북한이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조차 그들 안중엔 없다.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하고 독도를 제 것이라 우기는 저들의 이율배반적 ‘한-일 제휴’ 타령(그러고도 제휴를 입에 올리다니!)은 한국 모독이자 역사에 대한 조롱이다. 그럼에도 ‘민족공조’는 죄악이고 ‘사대공조’만이 살길이라 외쳐대는 ‘일진회’ 아류들이 득실댄다.
미군 재배치와 FTA 강행, 미-일동맹 강화, 일본헌법 개헌 등은 2대주주 중국의 급속한 몸집 불리기와 한반도의 패권구도 이탈 움직임에 대처하려는 1대주주의 중장기전략이다. ‘엘도라도 1대주주 지위를 지켜라!’ 한반도는 사육당하고 있다. 반쪽은 그나마 사육당하는 게 굶어죽는 것보다는 얼마나 행복한지, 그래서 이 체제를 영원무궁토록 유지하는 게 큰 복락임을 믿도록 세뇌하는 극장이다.
일본 조야가 재일 민단과 총련의 최근 화해 움직임을 ‘민단이 총련전략에 놀아나는 것’이라며 이간질하고, 납북된 김영남씨와 어머니의 상봉 결정을 한-일간을 이간질하려는 북한의 전략이라며 남-북한을 이간질하고, 언제나처럼 일본언론이 선동하고 한국언론이 이를 받아 떠들어대는 세상을 보면 다시 그런 생각이 든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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