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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미국 보수 승리 이끈 문화전쟁 한국 보수도 전철 밟나

등록 2006-06-08 18:58수정 2006-06-09 15:00

한승동의 동서횡단

자칭 ‘운동권 대부’였던 ‘뉴라이트’의 한 은사가 1980년대 전두환체제하의 한국경제 부흥이 자신의 사상적 전환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토로한 점은 흥미롭다. 고백의 진정성이 사뭇 궁금하지만, ‘박정희식 군부독재가 없었다면 한국경제 발전도 불가능했을 것’임을 단언하는 그의 ‘전향’이 79년 부마항쟁과 12·12쿠데타, 80년 광주항쟁의 피냄새가 미처 사그라들기도 전에 이뤄졌다니 놀라운 일이다.

80년대라면 ‘군바리(신군부)’와 ‘3저 호황’으로 기억되지만 또 한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때 숱한 신문·방송사들이 강제 통폐합당하면서 많은 기자들이 사지로 내몰렸으나 살아남은 쪽은 상당수가 사상 처음으로 대기업 봉급수준에 필적하거나 그것을 능가하는 고소득자가 됐다. 녹화사업 따위 배제와 매수를 위한 폭력과 돈이 마구 날뛴 곳은 언론계만이 아니었다.

1973년 리처드 닉슨 정권의 유엔주재 대사였던 조지 부시(아버지)가 열심히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범죄를 옹호하고 있을 때 그의 장남(아들 부시)은 텍사스 주 방위군 입대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베트남전 진흙탕을 피해갔다. 그들이 나중에 ‘부시 패밀리’를 이루고 미국 보수정치의 핵심파워가 될 줄은 그들도 몰랐겠지만, 바로 그해에 그들을 출세시키고 그들을 중심으로 미국사회를 총보수우익체제로 전환(우경화)하는데 총본산 구실을 했던 우익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출범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니얼 엘스버그의 ‘펜타곤 페이퍼’ 유출과 <뉴욕타임스>의 폭로 등으로 이어진, 60년대 이후 민권, 반전운동의 거센 불길은 미국 기성체제를 뒤흔들었다. 위기에 봉착한 미국 기득권계급은 대반격을 시작했다. 71년에 지배자산가계급을 감동시킨 루이스 폴웰(나중에 대법관이 됨)의 문서는 “공산주의자, 뉴레프트, 혁명주의자들이 미국 정치·경제체제 전체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며 구체적으로 “대학, 성직자, 언론, 언론인, 지식인, 예술가, 과학자, 정치인 등” 거의 모든 오피니언 리더그룹을 ‘제5열’로 지목하고 그들을 쳐부수고 흡수하는 대항세력을 양성하라고 촉구했다. 장기적인 계획과 전국 규모의 조직화, 교과서와 텔레비전, 법조계 등에 대한 철저한 감시체제 확립도 요구했다. 미국 기득권층이 무릎을 쳤던 그 문서는 바로 보수우익의 ‘문화전쟁’ ‘이데올로기 성전’ 선포였다.

문화전쟁의 엔진은 헤리티지 재단, 후버연구소, 미국기업연구소, 카토연구소 등 수많은 싱크탱크들과 제리 폴웰의 ‘도덕적 다수’, 팻 로버트슨의 ‘기독교연합’ 등 우익기독교 조직들이고 이 엔진들에 기름을 제공한 건 미국 재벌들이었다. 스케이프, 쿠어스, 올린, 브래들리 재단 등 이른바 ‘4자매’로 대표되는 억만장자들의 돈주머니는 각기 연간 수백만달러씩 천문학적인 거액을 퍼부었다. 67~97년 30년간 스케이프 재단 총수 리처드 맬런 스케이프가 쏟아부은 돈만 6억달러에 달했다.

이후 숱한 이데올로그들이 양육되고 대학과 의회, 언론사 등에는 그들이 양산해낸 정책 분석과 해법들이 거의 매일 뿌려졌다. 이 문화전쟁이 바로 레이건 시대의 1차 중흥기를 거쳐 30년만인 아들 부시 시대에 절정에 다다른 미국 보수우익 성전 승리의 비결이었다. 미국기업연구소 소장 크리스토퍼 디머스는 미국인의 마음과 사고방식을 뒤바꿔놓을 문화전쟁이 구체화하는데 10년은 넘게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고 예언은 실현됐다.


그 최전선에 한때 트로츠키파였던 윌리엄 크리스톨 등 이른바 ‘전향’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과 자칭 좌파였던 한국 뉴라이트 ‘전향’자들 행태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들불 같았던 민주화·통일운동과 박정희 암살 뒤 체제 재정비를 시작한 한국 보수우익과 약 10년 먼저 시작됐던 미국의 문화전쟁. 그 결과도 같을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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