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가톨릭대 교수·과학사회학
과학이 만난 사회
몇 해 전에 타계한 저명한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과학자사회에는 여타의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규범구조가 존재한다고 주장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었다. 머튼에 따르면, 과학지식이 여타의 사회적 지식에 비해 더 믿을 만한 것은 이 과학지식을 생산해내는 과학자사회를 규율하는 규범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과학의 성과가 개인이 아니라 과학자사회 전체의 것이라는 의미의 공유주의(communism) 규범, 과학활동에 있어서 성, 인종, 계급 등의 특수주의적 가치의 배제를 의미하는 보편주의(universalism) 규범, 특정한 이해관계에 따라서 과학활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의 사리사욕의 초월(disinterestedness) 규범, 최종 증명 때까지 판단을 보류하고 엄격한 규칙에 따라 과학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의 조직화된 회의주의(organized skepticism) 규범이라는 네 가지 규범들이 과학지식을 여타의 지식과는 달리 객관성과 신뢰성을 지닐 수 있게 해준다고 주장했다.
물론 머튼의 주장에 대해 많은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와 과학이 산업화와 군사화의 논리에 순응하면서 발전을 추구하게 됨으로써 이제 과학은 과학자사회의 전통적인 규범구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됐다는 것이 비판의 요체였다. 지난 100여년 동안의 과학의 발전과정을 보면 이러한 비판론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주장한 과학자사회 규범구조론은 과학자사회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 가치지향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머튼이 제시한 네 가지 규범은 비록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과학자사회가 잊지 않도록 노력하고 추구해야 할 그 어떤 규범적 에토스로서의 중요성은 여전히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논문조작으로 세기의 과학스캔들이 된 황우석 사태나 최근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한 연구자에 의해 저질러진 유명 저널의 논문조작사건 등 최근 잇달아 터진 과학 ‘비행’들을 지켜보면서 머튼이 주장한 과학자사회의 규범구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여전히 과학은 우리가 가장 신뢰할 만한 지식이지만, 황우석 사태나 오슬로대학 논문조작사건 같은 비행들이 계속 터지게 된다면 과학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질 것은 분명하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무너져가는 과학자사회의 규범구조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leeyoung@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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