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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연구는 과학자에게 치료는 의사에게

등록 2006-01-05 19:53수정 2006-01-06 15:50

과학이 만난 사회
아직 진행 중이지만, 줄기세포 사태에서 한국 방송과 언론의 사회적 인식론에서 빠진 것은 ‘과학과 의학의 관계’라는 주제다. ‘연구는 과학자에게 치료는 의사에게’라는 원칙을 아는 사람이 한국 사회에 몇 명이나 될까도 의문이다.

한국의 의학은 ‘임상의학’과 ‘기초의학’으로 이분화돼 있다. 서구에서는 기초의학이 임상의학을 선도하는 분위기라서 ‘생물의학’(biomedicine)이 의과학뿐만이 아니라 임상의료의 패러다임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거꾸로 서 있다. “응용성-경제성이 이끌어가는 것이 한국의 의학이다”라고 하면 사실과 별로 다르지 않다.

독일-일본식의 의과대학의 학제적 권력 구조상 임상교실을 담당하는 병원의 임상의사들이 기초교실보다 우위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정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적 기여도’나 ‘과학실천적 기여도’와는 상관없이 논문 저자 속에 아무렇게나 들어가던 최근까지의 한국의 과학연구 문화와 비슷한 궤적을 가지고 있다. 의과학, 또는 기초의학 연구의 독립성이나 나아가서는 의과학의 선도성이 확립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줄기세포 사태는 엄밀한 자연과학의 연구 훈련과 교육을 받지 않은 의사들이 생명과학연구, 혹은 의과학 연구와 행정 모두를 주도해 나가다가 생긴 갈등으로도 볼 수 있다. 성과 경쟁과 속도전의 추동력이 끌고 가면서 이런 제도적 허점이 수면 아래에 있다가 여실하게 터져 나온 것이다. 자연과학의 문화는 누가 중요한 연구업적을 먼저 내었느냐에 달려 있기는 하지만 다른 중요한 측면으로는 정직성과 윤리성이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업적주의에만 매달려 있었다.

아마 과학과 의학의 관계가 한국적으로 재정립된 생명과학대학원(School of Life Sciences) 혹은 의과학대학원(School of Medical Science)이라는 새로운 연구체제를 구상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에는 기초성-문화성이 응용성-경제성에 짓눌려 있었던 것을 펴고 제대로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의 자연과학대학에 소속된 생명과학 분야의 과학자들이 의과학(medical science)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든지(혹은 생명과학대학원의 설치와 운영), 아니면 아예 의과학대학원이 의사를 양성하는 의학대학원과 병행되는 방향으로 가야지 한국의 생명과학이 제대로 서면서 의과학 연구가 생명과학 전반을 선도하는 국가연구체제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정호/고려대학 생명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 yicheong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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