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피랍자 가족이 미국의 협력을 촉구한 사례
‘미국 역할론’ 주장에 ‘반미 감정 부추기기’ 비판 날세워
언론학자들 “대선 의식한 정치적 해석…여론 무시한 보도”
언론학자들 “대선 의식한 정치적 해석…여론 무시한 보도”
일부 언론이 아프가니스탄 피랍자의 생명을 구하자는 뜻에서 나오고 있는 ‘미국 역할론’을 ‘반미 부추키기’로 호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언론학자들은 국민의 생명을 구한다는 본질을 외면한 채 자신의 이념성향에 상황을 꿰어맞추는 대표적인 왜곡보도라고 지적했다.
■ 미국 역할론 내용과 맥락= ‘미국 역할론’은 피랍자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 과제이며, 미국이 이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국제정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런 인식 아래 피랍자 가족들이 미국 대사관을 방문해 미국의 역할을 주문했다.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종교계에서도 거의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다. 또한 <한겨레>는 물론 <조선일보>도 7월 27일치와 28일치 사설에서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정부가 보다 인간의 생명을 중시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고 한국 정부를 지원해주기를 바란다”(28일치)고 촉구했다.
미국 언론도 한국의 여론에 주목하는 형식으로 미국 역할론을 다루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1일 “한국이 인질과 죄수의 맞교환이라는 탈레반의 요구에 미국과 아프간 정부가 유연성을 보여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이날 “피랍자 가족들과 한국 시민들은 미국의 적극 개입을 촉구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도 미국을 자극하는 외교적 수사를 구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미국 역할론이 미국에서 의제화로 나타난 것이다.
■ 조선·동아의 논조 변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2일부터 돌연 ‘반미 경계론’을 들고 나왔다. <조선>은 이날치 ‘이 비극마저 반미 선동 소재로 써먹겠다는 건가’라는 사설에서 “사태가 길어지고 인질 2명이 살해되자 일부 세력들이 그 책임을 미국에 돌리려 시도하기 시작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동아>도 같은 날 ‘정치권, 인질사태 가벼운 주문 자제해야’ 제목의 사설에서 “미국을 잘못 끌어들이게 되면 반미 감정만 부추길 수 있다”고 가세했다. 이어 조선은 3일치 1면 머리기사를 포함해 종합면과 칼럼, 사설 등에 걸쳐 “탈레반 책임은 외면한 채 미국으로 책임을 몰고” 간다며 시민단체나 미국을 방문하는 정치권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 언론학자 견해= 정연우 세명대 교수는 “우리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는 마당에 파병을 이끈 미국이 적극 해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것을 반미세력으로 몰아가면서 정치적 코드로 해석하는 그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미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반미라고 한다면 국민 대다수를 반미로 몰아세우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2002년 대선 때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미선·효순양 사태 여파로 반미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진보 진영의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보는 한나라당과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보수 후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보수 언론이 원래 친미 경향의 논조를 갖고 있어서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한국 국민의 여론을 파악하지 못하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신문이자 미국의 극우지 같은 보도를 하는 부분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현숙 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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