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엇박자? 강온 역할분담?
한국과 미국의 엇박자인가, 아니면 역할 분담인가?
탈레반에 억류된 한국인 인질 사태의 해결 방안과 관련해 ‘군사적 접근’ 문제를 놓고 한-미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이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리처드 바우처 미국 국무부 남·중앙아시아 담당 차관보는 2일(현지시각) “탈레반이 인질을 풀어주도록 모든 압력이 효과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가해질 필요가 있다”며 “이미 아프가니스탄 사회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들과 함께 잠재적인 군사적 압력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는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아세안지역포럼(ARF) 외무장관 회담에 참석한 존 네그로폰테 미 국무부 부장관과 양자회담을 한 뒤 “현재 한국과 미국 모두 군사작전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고 밝힌 것과 다른 분위기이다.
정부 당국자는 3일, ‘엇박자’설과 ‘강온 양면 역할 분담’설에 대해, “둘 다 과도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이 당국자는 “바우처 차관보의 발언은 일반적 언급이다. 뭔가 새로운 방침을 밝힌 것으로 볼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한국과 미국은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으며, 양국 모두 현 단계에서 군사작전에 반대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바우처 차관보가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을 염두에 두고 이런 발언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자신이 사태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제기한 ‘탈레반에 대한 다양한 압력’의 내용이 뭐냐는 취재진의 집요한 질문을 계속 피해 가다가 ‘군사작전’이 아닌 ‘잠재적 군사적 압력’을 조심스레 거론했다. 그러면서 “인질들이 평화적으로 안전하게 풀려나게 하는 게 목표”라며 “우리는 한국 및 아프간 정부와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테러·납치 세력에 양보는 없다’는 미국 정부의 대원칙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미국으로선 ‘한국인 인질-탈레반 수감자 교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군사적 접근’에 대한 한·미 양국 정부 고위 당국자 발언의 미묘한 차이는 그 의도에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미국은 원칙을 강조하며 탈레반을 압박하고, 한국 정부는 탈레반을 설득하려고 나서는’ 강온 역할 분담의 모양새를 띠고 있다.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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