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엄마가 결혼했다, 내 삶이 통째 바뀌었다

등록 2007-02-04 20:54

엄마가 결혼했어요
엄마가 결혼했어요
내가 읽은 한 권의 책 / 엄마가 결혼했어요

우리 엄마, 아빠는 이혼했어. 그걸 멋있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니? ‘그들은 이혼했다.’ 그게 전부지.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혼 가정의 아이치고는 담담하다고 할까, ‘쿨’하다고나 할까. 어쨌든 꽤나 담백한 서술이다. 미국 동화라서 그럴까. 우리보다 훨씬 전부터 이혼과 재혼이 일상화돼서 “내 아이와 당신 아이가 우리 아이를 때려요!”라는 우스갯소리도 구닥다리가 된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이제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심상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싶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읽다 보면 화자인 열두 살 찰스의 말투는 쿨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 것이 보인다. 오랜 세월 익숙해 있던 삶의 방식이 하루 아침에 바뀌고, 엄마와 아빠와 나 사이의 관계가 뒤틀리는 꼴을 봐야 하는 아이의 마음이 어떻게 담담할 수가 있겠는가. 상실감, 분노, 슬픔, 외로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안정한 가족 상황에서 고통받는 아이의 공통 정서일 것이다. 동시에 그것을 표현하는 양상과 극복하는 과정, 주위 사람들의 역할 등에서 사회적·문화적·개인적 차이가 드러난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그런 공통점을 확인하면서 다른 이들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고, 차이점을 확인하면서 시야을 넓히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다.

열두살 소년 찰스의 방황
이해 구하는 따뜻한 대화에
마음의 고통 조금씩 풀어지다


이 책은 그 두 면모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고 몇 주가 지났을 때’ 새 남자와 데이트를 시작하더니 어, 하는 사이에 결혼을 해치운다. 그 남자가 데려온 십대 딸은 전화기와 목욕탕을 점령하고, 다섯 살 꼬마는 방을 같이 쓰는 것도 모자라 늘 쫓아다니며 바보 같은 놀이를 하자고 조른다. 찰스는 ‘마치 정신 병동에서 사는 것 같’다. 이 푸념은 과장도, 철없는 어리광도 아니다. 그 심정이 이해가 될 뿐만 아니라, 얘는 왜 이리 참기만 할까, 한번 들이받아 버리지 않고! 하는 화가 솟구칠 정도이다. 그만큼 작가의 상황 묘사가 주인공에 대한 강력한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다.

다른 한편, 아이가 속으로는 반발하면서도 겉으로는 온건하게 가정의 질서에 순응하는 모습이 주목할 만하다.

이런 강력한 질서를 만드는 요소 하나는 엄마의 달변이다. ‘내가 한 모든 말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릴 정도로 아이를 승복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새아빠의 따뜻한 침묵. 목청 두어 번 가다듬는 게 ‘우리가 나는 가장 훌륭한 대화 중 하나’일 만큼 말이 없는 새아빠는, 찰스가 옛날 사진을 보며 울 때 어깨를 빌려주고, “네가 힘들지 않도록 도와줄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단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단다”며 진심으로 미안해 한다. 상황을 납득시키고 이해를 구하는 논리적이고 침착한 말의 힘, 아이의 고통을 헤아리며 용서를 구하는 마음의 힘은 확실히 우리가 새롭게 갖춰야 할 요건이다.

이혼과 재혼으로 인한 가족의 재구성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라면, 앞선(?) 사회를 이렇게 타산지석으로 삼는 일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을 것이다. 바바라 파크 글, 김중석 그림, 고은광순 옮김. 웅진주니어.

김서정/동화작가, 중앙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sjchla@hanmail.net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