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한 권의 책 / 빨간 물고기를 따라간 날
한 여자 아이가 있다. 늘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아이다. 눈초리가 들고양이처럼 사나워 보인다. 말을 건네기도 어려울 만큼 언제나 화를 내고 있다. 혹시라도 이런 아이를 보게 되면, 좀더 사려 깊게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외롭고 힘들어서,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정말로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니까.
엄마도 친구도 없는 소녀
빨간 물고기를 따라가
낯선 세계서 깨달았죠
정말 소중한 게 무언지 대만 작가 장원저의 <빨간 물고기를 따라간 날>(문현선 옮김, 토토북)은 병으로 엄마를 잃고, 아빠와 둘이서만 살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냥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뜻밖에도 분위기가 산뜻하고 깔끔하다.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고, 이름은 반짝이다. 반짝이가 자꾸만 화를 내는 건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운이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마 없는 아이가 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갑자기 친구들도 자기와 놀지 않으려 하고 선생님도 딱딱한 표정으로 꾸짖기만 한다. 게다가 아빠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빈 개목걸이만 들고 돌아온다. 너무 화가 나서 울다가, 또 울다가 무릎을 걷어찼을 때 아빠의 표정이란!
그래서 반짝이는 처음으로 집을 떠나 혼자서 먼 길을 간다. 산속에서 살고 있다는 외할머니를 찾아가려는 거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외할머니만큼은 자기를 미워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작고 빨간 물고기를 쫓아서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분홍색 꽃잎들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복숭아나무 숲을 지나고, 어두운 동굴로. 이윽고 그곳을 벗어나자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 나타나고,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 장면에 이르러 비로소 이야기의 짜임새가 보인다. 다음은 중국 동진 시대의 작가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의 일부분. ‘무릉의 어떤 어부가 시내를 따라 가다가 길을 잃었다. 복사꽃이 어지럽게 날리는 숲을 지나고, 동굴을 지났더니….’ <빨간 물고기를 따라간 날>은 날카로운 사금파리에 베인 것처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가 현실과 다른 낯선 세계에 가서 위안을 받고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반짝이가 그 세계로 들어가는 풍경과 나오는 풍경이 서로 맞물려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옛날의 어떤 글과 포개 읽기만 하는 것은 가장 단순한 독법이 될 것이다. 오히려 눈길을 끄는 것은 견디기 힘든 슬픔에 처한 여자 아이의 미묘한 심리, 소리와 빛깔을 풍성하게 담고 있는 언어 표현들, 그리고 상상력이 마음껏 펼쳐진 동화적인 장치들이다. 반짝이는 자기가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이 마을에서 다시 만난다. 하지만 그 가운데 정말로 소중한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기가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점이다. 자기가 먼저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기 때문에, 어떻게 다가서야 할 지 몰라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 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자기가 보고 온 세계를, 자기가 경험한 그 비밀을 아빠에게도 털어놓을 수는 없었지만.
오석균/도서출판 산하 주간 bach1958@yahoo.co.kr
빨간 물고기를 따라가
낯선 세계서 깨달았죠
정말 소중한 게 무언지 대만 작가 장원저의 <빨간 물고기를 따라간 날>(문현선 옮김, 토토북)은 병으로 엄마를 잃고, 아빠와 둘이서만 살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냥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뜻밖에도 분위기가 산뜻하고 깔끔하다.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고, 이름은 반짝이다. 반짝이가 자꾸만 화를 내는 건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운이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마 없는 아이가 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갑자기 친구들도 자기와 놀지 않으려 하고 선생님도 딱딱한 표정으로 꾸짖기만 한다. 게다가 아빠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빈 개목걸이만 들고 돌아온다. 너무 화가 나서 울다가, 또 울다가 무릎을 걷어찼을 때 아빠의 표정이란!
오석균/도서출판 산하 주간 bach195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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