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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정운네 따뜻한 ‘가족애’ 훈민정음에 실어…

등록 2006-12-17 17:11수정 2006-12-17 17:19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때 일화 고증통해 재현한 편지글 눈길
내가 읽은 한 권의 책 / 초정리 편지

초등학교에서 영어 전담교사만 7년째 하면서,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해마다 좋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3~4살 적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요즘 아이들은 발음이나 회화 실력이 아주 좋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일수록 우리 글보다 영어가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나는 학년 첫 영어 시간에 한글의 우수성을 꼭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Mingi’라는 이름을 써놓고 이것을 영어권 사람들은 ‘민지, 민기, 마인기’ 등으로 읽을 수 있고, 영어 단어에 발음부호가 없으면 읽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게 읽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 때를 잡아 나는 과학적이며, 읽고 쓰기 쉬운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싱그레 웃는다. 아이들 딴에도 우리 한글이 영어보다 우수하다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초정리 편지>(배유안 지음, 창비)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실 제, 눈병 치료를 위해 초정리에 피접 오셨을 때 만났던 한 아이의 이야기로 글의 머리를 잡는다. 작가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드시고, 시집 간 따님인 정의공주에게 한글을 시험해 보았다는 짤막한 일화에 착안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석공의 아들인 ‘장운’은 비록 천민의 자식이지만, 효성이 지극하고 반듯한 심성의 아이다. 어느 날, 산토끼를 좇다가 토끼눈 할아버지(세종대왕)를 우연히 만나, 그 분이 나라님인 줄도 모르고 훈민정음을 배운다. 토끼눈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할 때면 장운은 마당에 글씨를 써서 소식을 남긴다. 또 어려운 집안 살림으로 인해 남의집살이를 간 누나와도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천민의 자식이라서 글(한문)을 배울 수 없었던 장운에게 있어서 그 앎의 기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또 제 마음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흐뭇하다. 이런 장운의 마음이 고스란히 독자의 가슴에 전달된다. 이는 글을 엮는 작가의 뛰어난 솜씨 덕분이기도 하다.

글을 읽다보면 장운이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그들의 결 고운 심성에 도취된다. 또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자를 고증을 통해 재현한 편지들이 눈길을 끌며 미소를 자아낸다.

그러나 글 속의 인물들 모두 심성 고운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 사회가 그렇듯 질투심에 불타 장운을 골탕 먹이려는 ‘상수’라는 아이도 있다. 그래서 글의 긴장감도 생겨 읽는 즐거움이 있다.


토끼눈 할아버지와 재회한 마지막 장면은 찔끔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상수’의 시기로 곤경에 빠진 장운을 단번에 해결해 주신 토끼눈 할아버지의 아이디어! 그것 또한 멋진 갈등의 해결이다. 그게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은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왠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그것도 예쁜 편지지에 뾰족하게 깎은 연필로 곱게 사연을 적어 보내고 싶어진다. 편리하고 단순한 전자메일과 메신저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 맑고 화창한 날 귀한 사람에게 편지 한 장 써보라고 권해 보면 어떨지?

원유순/동화작가 dari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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