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내가 읽은 한 권의 책 /
‘전학 간 윤주 전학 온 윤주’

동화는 결핍으로 시작해서 충족으로 끝난다는 공식을 가지고 있는 장르다. 전래동화가 그렇고, 그 맥을 이어받은 현대 동화도 거의 그렇다. 가족, 사랑, 물질, 미모, 용기, 지혜 등, 결핍의 양태는 다양하고, 그 결핍된 것들이 채워지는 양상도 여러 가지다. 외롭고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어린 존재가 갖은 어려움을 넘어서 풍성한 해피 엔딩을 맞는다는 동화적 이야기는, 모든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소박한 행복에의 염원을 대신 실현해 준다. 그것이 동화가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가난한 윤주 부유한 세원
힘든 현재와 희망의 미래
담담하게 나누며 커간다

가난한 아이는 동화에 자주 쓰이는 소재인데, 아이가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식을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다. 전래동화에서는 요정의 도움이, 근대 동화에서는 부자 친척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자본주의의 꽃이 피어나던 시대에는 자신의 노력과 모험이 기반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 꽃이 악취 풍기는 식충식물의 꽃이라는 인식이 퍼진 지점에서는 가난의 문제가 그렇게 행복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뿌리 깊은 사회악으로서의 가난에 희망 없이 희생당하는 아이들이 우울하게 그려진다.

그런 동화들은 굴곡 많은 서사, 강력한 캐릭터, 뚜렷한 주제의식으로 독자의 주의를 끄는 데 유리하다. 그렇지 않은 동화, 그러니까 행복한 결말도, 분노와 반성을 끌어내는 힘찬 고발도 없는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약해 보인다. 그러니 그런 약한 토대 위에서도 탄탄하게 자리잡고 오롯하게 한 세계를 만들어낸 동화를 보면 더 반갑다. <전학 간 윤주 전학 온 윤주>가 그런 동화다.

공사장에서 일하다 다리를 다쳐 젖소목장 품꾼이 된 아빠, 병이 깊은 엄마, 병원에 가는 엄마 대신 세 동생을 보느라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결석해야 하는 2학년 윤주. 넉넉한 집 막내에다, 언니가 자기 대신 엄마 옆에서 잤다고 하루종일 울 정도로 철부지인 세원이. 이런 인물 설정은 빈부 대립이나 선악 대결 구도로 이어지기 십상이지만, 이 작가는 그런 공식을 피해 간다.

대신 펼쳐지는 것은 두 아이 사이의 아이다운 우정이다. 그 아이 아빠가 다리를 절든 말든, 그 집으로 가는 길이 젖소 똥오줌으로 질퍽거리든 말든, 방 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든 말든 세원이는 함께 놀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기뻐 어쩔 줄 모르며 윤주에게 다가간다. 윤주도 세원이가 있는 집 어리광쟁이 막내건 말건, 부럽기 짝이 없는 동물 인형을 한 상자 가득 갖고 있건 말건, 함께 어울려 놀며 담담하게 무서웠던 지난 날과 힘든 현재와 희망의 미래를 주고받는다. 그런 두 아이가 정말이지, 작품 안에 등장하는 진달래꽃처럼 환하고 예쁘다.

윤주는 초등학교 교사인 작가가 만난 실재 인물로 보이는데, 그 아이를 화자로 삼지 않은 배려가 돋보인다. 어쩌면 윤주는 이 이야기에서보다 더 가난하면서도 더 착하고 의젓했을지 모르지만, 그 사실을 직접 전달했다면 이야기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아이는 어설픈 영웅이 되었을 수도 있다. 원숙하고 문학적인 절제의 태도를, 딱 아홉 살 인물들의 천진하고 경쾌한 언어와 행동 속에 감추어 발휘해 놓은 작가의 역량이 믿음직하다. 장주식 글, 정문주 그림. 문학동네/8500원.

김서정/중앙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아동작가 sjchl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