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아저씨 발명왕 되다
농자재발명 이해극씨 동화로 물질만능 사회에 빨간 고추맛
내가 읽은 한 권의 책 / 고추 아저씨 발명왕 되다
텔레비전의 어느 개그 프로그램이었다. ㄱ:우리 속담놀이하자. ㄴ:좋아. 내가 먼저 할게. 우물가서 숭늉 찾는다. ㄱ:(ㄴ을 마구 때리면서) 시간이 남아 도냐? 생수 마시면 되잖아! ㄴ:미안, 미안. 다른 거 할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ㄱ:(ㄴ을 마구 때리면서) 쓸데없는 짓을 뭐하러 해? 비행기 타면 되잖아! ㄴ:미안, 미안. 티끌 모아 태산. ㄱ:(ㄴ을 또 때리면서) 쓸데없이 티끌을 왜 모아! 돈이나 모아! ㄴ:(징징 울면서) 잘못했어. 난 바본가 봐. ㄱ:맞아, 넌 바보야!
계속 이어지는 ㄴ의 속담에 ㄱ은 무자비하게 ㄴ을 구박하며, 전혀 다른 생각을 말한다.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 참, 말 되네. 맞아, 맞아!”하면서.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이 속담놀이를 보고 있노라면 단순히 발상의 전환이라고 하기에는 섬뜩할 정도로 달라진 가치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 뒷맛이 영 개운하지 않다. 지금 우리들의 세상, 곧 작은 일, 눈에 띄지 않는 것, 땀 흘려야 하는 일, 사람 앞에 나서지 않는 것, 아무도 몰라주는 일, 한마디로 빛도 이름도 없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존경심은 커녕 이해도 관심도 없는 우리들의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해서….
아이들에게 작은 씨앗과 같은 소박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작은 씨앗’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나온 <고추아저씨 발명왕 되다>(청어람)는 지금 충청도 제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이해극 아저씨의 이야기다. 농사가 즐거워 농부가 되었고, 농사를 덜 힘들게 짓고자 여러 가지 농자재를 발명한 그의 이야기를 재미있는 동화로 꾸몄다. 동화는 재미있지만 세상은 말 그대로 전쟁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조류독감, 광우병, 이어지는 각종 천재지변으로 땅과 바다와 몸을 섞으며 사는 이들은 콘크리트와 디엠비(DMB)를 의지하며 사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고통받고 있다. 그래도 무슨 희망의 계시를 받은 자들처럼 아침보다 일찍 일어나 논과 밭으로, 바다로, 가축들의 우리로 나선다. 농부, 이해극 아저씨처럼!
여느 집 사내 아이처럼 개구쟁이였던 주인공은 중학생 때에 농촌봉사모임인 4에이치(H)에 가입한다. 처음에는 친구 따라 강남 간 듯한 일이었지만, 결국 ‘농촌사랑’은 주인공의 인생을 완전히 뒤흔들며 평생 그의 삶의 희망이자, 기쁨의 이유이며, ‘땅’의 위대함을 알게 되고, ‘땅’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땅과 사람이 함께 화목하며 사는 법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농사 짓는 사람들을 위해 비닐하우스의 온도변화를 알려주는 기계(다목적 온도변화경보기) 외에 밭에 두둑을 쌓고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한꺼번에 해주는 기계(밭두둑 피복성형 일관작업기), 수확한 농작물을 트랙터에서 바로 차에 실을 수 있도록 하는 기계(트랙터 부착형 상차작업기) 등 많은 것을 발명했다. 게다가 식량이 부족한 북한에 가서 북한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농사법을 가르치면서 많은 ‘농사 제자’를 길러냈다. 지금도 주인공은 1년에 몇 차례씩 북한에 가서 농사 제자들을 가르친다.
막연했던 어린 중학생의 농촌사람의 꿈이 이 요란한 물질만능과 성공제일주의의 세상에서 빨간 고추처럼 영글어 가고 있다. 그 땀과 눈물의 맛은 고추처럼 달짝지근하면서도 매운 맛이 대차게 톡 쏘기도 한다. 그 매운 맛은 우리들에게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얘들아, 도대체 뭣하러 아침마다 해가 뜨는 줄 아니?”하면서!
노경실/소설가, 동화작가
“뭣하러 아침마다 해가 뜨는 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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