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
“‘공부하냐?’ 노크해도 대답이 없더라구요. 그래 시험 땐 데 혹시 또 자는 건 아닌가 하고 방문을 열어 봤죠. 그런데 책상 앞에 앉아 있더라구요. 그런데 가까이 가 보니 이어폰 끼고 노랠 듣고 있는 거예요. 그래, ‘넌, 공부는 안 하고 밤낮 노래만 듣냐?’ 하고 뭐라 그랬죠. 그랬더니 자기는 노랠 들으면서 공부해야 더 잘 된다는 거예요. 그래, ‘노래 들으면서 어떻게 공부가 되냐, 조용히 정신 집중을 해도 될까 말까 하는데’ 하며 이어폰을 뺐었죠. 아, 그랬더니 애가 버럭….”
자습감독 들어가란다. 자습 감독이라고 해 봤자 애들 밖에 못 나가게 하고 교실 안에서 조용히만 있게 만드는 거다. 그래서 최고의 자습 감독은 아예 애들을 다 잠재우는 것. 하지만 한 시간내내 남들은 다 자는데 멍청하니 망 봐야 된다는 것. ‘차렷, 경례’와 함께 자습 어디 한 두 번 해 봅니까 하듯, 아이들이 알아서 책상 위로 쓰러진다. 한창 팔팔할 나이의 이 아이들을 그 누가 이렇게 곤약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때 이른 장대 비로 마음까지 푸욱 가라앉은 오후다. 그래서 교실은 낯설 정도로 조용하고.
모두들 드러누워 있는 가운데 한 아이가 이어폰을 낀 채 공부를 하고 있다. 무료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슬슬 그 아이 곁으로 다가간다. “넌 잠도 없냐?” “?” 농담이 유치했는지 못 알아들은 것 같다. “좋은 노래 듣나 보네?” 그제서야 아이가 이어폰을 뺀다. “들어 보실래요?” 건네 준 이어폰엔 시끄러운 음악 대신 고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그리고 가냘픈 여가수의 음성….
아이가 빌려 준 MP3를 들고 천천히 교탁으로 돌아온다. 볼륨을 높이자 눈앞에 펼쳐진 교실 풍경이 갑자기 정지된 화폭처럼 낯설다. 물 속에 들어간 듯 노래 밖의 세상은 갑자기 숨을 죽이고, 그것도 조용히, 아주 조용히. 노래 안의 세상엔 가녀린 여인, 아름다운 선율과 애절한 목소리, 매력적인 고음. 그리고 다른 그 누구에게도 눈 돌리지 못하게, 귀 기울이지 못하게 ‘쿵쿵’ 울리는 소리는 고동치는 심장을 가만 놔두질 않는다.
‘바보처럼 사랑 안 해 말하는 널 사랑한다’
스스르 눈을 감는다. 그들처럼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으니 그들이 보인다. 아, 이런 모습이었구나. 저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 그래서 그토록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그들. 그 옛날 옆 사람들까지 다 들을 수 있던 그 투명했던 세계가 아니다. 오직 그들 귀에만 들리는, 그래서 주변에 관심을 가질래야 가질 수도 없는 바로 그 무엇. 여지껏 내깐엔 그들 세계를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래가 있는 세상과 노래를 들을 수 없는 세상이 동시에 존재하다니.
‘너의 차가움엔 그래 다 이유 있었건 거야.’ 조용히 눈을 뜬다. 창밖에 휘몰아치는 바람에 빗물이 해일처럼 몰아 친다. 유리창이 빗물로 흥건하다. 그 아이의 엄마 눈에서 흐르던 눈물처럼. 먹통이 되어 버린 텔레비전마냥 아이들 몇이 서로에게 말을 건넨다. 입만 벙긋대며, 느린 화면 보듯, 유리 건너편의 교실을 보듯,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그렇게 자신이 할 일들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무심결에 몇 구절 따라 부른다. 아이들이 웃는다. ‘내 얘기 너무 쉽게 하지 마. 아직 나를 모른다고 말해 줘’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너의 차가움엔 그래 다 이유 있었건 거야.’ 조용히 눈을 뜬다. 창밖에 휘몰아치는 바람에 빗물이 해일처럼 몰아 친다. 유리창이 빗물로 흥건하다. 그 아이의 엄마 눈에서 흐르던 눈물처럼. 먹통이 되어 버린 텔레비전마냥 아이들 몇이 서로에게 말을 건넨다. 입만 벙긋대며, 느린 화면 보듯, 유리 건너편의 교실을 보듯,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그렇게 자신이 할 일들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무심결에 몇 구절 따라 부른다. 아이들이 웃는다. ‘내 얘기 너무 쉽게 하지 마. 아직 나를 모른다고 말해 줘’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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