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미래의 나의 아들에게
국어 교과서에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글이 있다. 다산 정약용이 쓴 요즈음으로 치면 ‘감방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내용은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라’가 아니고, ‘채소밭 잘 가꾸고 유산으로 ‘근검(勤儉)’ 두 글자 남기겠다’는 거다.
“너희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뭘 물려 받고 싶으냐?” 백퍼센트 퍼펙트하게 ‘돈’이란다. 그러면 그 물려받은 돈으로 뭐 할래? 포르쉐로 시작해 예쁜 연애인까지 스포츠신문에나 나옴직한 말들만 들입다 쏟아낸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편지를 쓴다. 미래의 아들에게, 아니, 딸도 좋다. 나이 17세.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 끝난 뒤 방황하는 미래의 나의 아들, 딸에게 지금부터 편지를 쓴다. 이왕이면 이름까지 작명할 수 있도록, 실시!
미래의 아들, 준에게.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니 애비다.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쓸려고 하니 좀 쑥스럽구나. ^^jj 요즘 날씨가 무척 더운데 어떻게 지내냐. 아빠가 네 나이 때만 해도 가을은 선선해서 살기 딱 좋았는데 요즘은 어떻게 된 게 무척 더운 것 같구나. 아마도 엘니뇬지 뭔지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인 것 같구나. 미안하다. 다 아빠세대가 잘못해서 너희들이 고생인 것 같으니.
그나저나 너 요즘 사춘기인 것 같다. 통 대화도 않고, 짜증만 내는 걸 보니. 그러나 아빠는 걱정 않는다. 사춘기가 뭐 오래 가겠냐. 그건 그렇고 이 몸이 너한테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 뭔고 하니, 제발 공부 좀 해라!! 네가 아무리 나를 닮아 초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두뇌를 가졌다고 해도 기초공사가 부실하면 그건 말짱 꽝이다. 물론 공부라는 것이 왕 짜증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야지 어떻게 하겠냐. 아암, 해야지. 하루에 한 3시간씩만 좀 해라. 그리고 학원 갈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마라. 아빠 돈 없다. 너 키워주고 먹여 주고 학교 보내 준 게 얼만데 또 너한테 투자하겠냐. 나 쓰기도 모자란다. 그러니까 공부 좀 열씸히 해서 가능하면 장학금 받도록 해라. 맨날 놀 생각 말고. 네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그러고 나서 좋은 데 취직해 빨리 돈 벌어야 나도 네 덕에 일 안 하고 놀 수 있지 않겠냐. 내 노후 계획 중 하나가 바로 아들, 딸 자식들 돈 후려서 해외 여행가는 거다. 그래서 해보고 싶은 것 다 해 보며 살란다.
그리고 아빤 너만할 때 정말 공부, 공부, 공부만 하고 살았다. 물론 네 나이 때면 한창 놀고 싶기도 할 거다. 그러나 조금만 절제하고, 놀아도 학생답게 놀아라. 술, 담배 하다 걸리면 가만 두지 않을 테니. -.- 그리고 이건 아빠가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 하는 얘긴데 여자 사귈 때 돈 좀 덜 들 것 같은 애 사귀어라. 왠줄 아냐? 헤어질 때 기분 엄청 나쁜데 거기에다 돈까지 잃어 버렸다고 생각해 봐라. 그거처럼 열 받는 거 없다. 그리고 지금 사귀는 애는 웬만하면 바꾸도록 해라. 별로 안 이쁘니까. 그럼 이만 줄일 테니 공부 열씸히 해라.
추신: 이 편지 받고 너도 너의 미래의 자식에게 편지 한 번 써 봐라. 무지 재미있고 또 이런 편지 쓰다 보면 이 애비 맘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테니.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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