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우리 반 민철(가명)이는 정말 조용한 아이다. 아침에 교실 문을 드르륵 열면, 민철이는 늘 같은 표정으로 말 없이 꾸벅 인사만 한다. 수업 중 발표를 시켜도 말이 없다. 심지어는 다른 아이들과 놀 때도 말 없이 입가에 미소만 짓는다. ‘얘가 참 기분이 좋구나.’ 라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체육 시간에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하며 살짝 웃을 때다. 이 아이를 보면 난 ‘성격이려니…’ 하는 생각과 함께, 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을 느낀다. 아이의 깊은 내면은 아이 자신이 아니면 도무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아주 깊고, 심오한 그 무엇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민철이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아이의 문제로 상담을 할 것이 있다고 하셨다. 내가 볼 때는 민철이는 지나치게 조용한 것 빼고는 상담할 것이 없는데, 어떤 문제일지 너무 궁금했다. 어머니는 아이의 학교 생활을 물어보셨다.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라고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아이가 4형제 중에서 장남이고, 책임감이 무척 강한 아이이며 체육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뒤 한 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몸에 자해를 했어요.” 깜짝 놀랐다. 그 조용한 아이가 왜? 이야기를 잘 들어 보니, 학교에서 그렇게 말이 없는 아이가 집에 와서 엄마에게만은 이야기를 잘 한다고 했다. 심성이 아주 착한 아이라 주로 학교에서 있었던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를 주로 한다고 했다. 반면, 학교에서 있었던 나쁜 일이나 힘든 일은 어머니가 걱정을 할까봐 가려가며 말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2학년때 까지는 놀이와 흥미 위주의 수업을 받다가 3학년이 되어서 갑자기 학습량도, 숙제도 많아지니 보기엔 조금 힘들어했다고 했다. 학교에 일찍 가야 한다고 자꾸 아침마다 조르고, 아플때 숙제를 못하면 앓으면서도 걱정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민철이가 오른쪽 손목 부위를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긁고 웃으면서 이것 좀 보라고 했다고 했단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일단은 기초학습 훈련의 일환으로 2학년에서 3학년으로 갓 올라온 아이들에게 숙제 검사를 엄하게 한 내 잘못이 크고, 또 표현력이 약한 아이를 제 때 사랑으로 감싸지 못한 것이 큰 실수였다. 그래서 어머니와 내린 결론이 ‘아이가 나름대로 표현하고 싶은데, 성격상 잘 표현하지 못하여 마음의 병이 된 것 같다.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주는 것이 지금 낼 수 있는 해결책이다.’였다. 그 이후에 어머니와 나는 문자를 가끔 주고 받으며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 나름대로 노력했다.
아이는 1학기가 다 지나도록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이 아이가 밝고 건강하게 자랄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학부모 공개 수업때, 자신을 보러 온 어머니 앞에서 아이는 나와 만난 이후 처음으로 손을 번쩍 들고 큰 소리로 발표를 했다. 그 광경이 내 눈에는 왜 “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어머니, 사랑해요.”로 보였다. 수업 내내 아이를 예쁜 미소로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의 미소 또한 내게 무한한 희망을 가지게 했다. 엄마의 사랑은 아이에게 용기를 내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한다. 가정이 희망이다.
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교사 ozoazoayo@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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