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
지난 주 금요일, 3학년 3개 학급이 모여서 야영을 했다. 그 다음 날 벌어지는 스위스와의 월드컵 축구 응원을 겸한 야영이었다. 당초 시험이 코 앞이라 엄두도 못 낼 일이었으나 녀석들이 어찌나 졸라대는지 내가 손을 들고 말았다. 사정은 옆 반도 비슷한 모양이어서 결국 마음 약한 담임 셋이서 총대를 메기로 했다. 급하게 가정통신문을 내고, 학교 쪽에 합동 야영이라는 이름으로 결재를 맡고, 그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일을 처리한 뒤, 희망 학생 수를 받아보니 세 반 합쳐 80여명 가까이 되었다. (시험을 앞두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학부모님들이 얼마나 욕을 했을까)
응원에 초점을 맞춰 기타 야영 프로그램은 최대한 단순하게 짰다.
< 6시 운동장 집합―모둠별로 저녁 지어먹기― 학급 대항 단체경기― 응원 사전 행사(페인팅, 여장 경연대회)― 영화 관람하기, 혹은 공부(도서실)― 취침―축구 응원>
당일 저녁을 먹고 나니 이미 날이 어둡다. 어쩔 수 없이 학급대항 경기를 대폭 줄여 참가자 전원이 함께 하는 학급별 이어달리기 하나만 하기로 했다. 거의 달밤에 체조 수준이었다. 분명히 우리 반은 흰 바통을 들고 출발했는데, 나중에 마지막 주자가 들고 들어온 것은 노란색 바통이었다. 사람 분간이 안 되어 중간에 다른 반 주자 것을 받아들고 뛴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신이 나서 다른 시합마저 하자고 보채기도 하였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여장 경연대회. 반 별로 두세 명씩 곱상한 남자애들을 붙잡아다가 옷 벗겨 갈아입히고 브래지어 채우고, 집에서 훔쳐온 엄아 화장품으로 연지곤지 찍고…. 이렇게 분장시킨 아이들을 한 명씩 도서실 무대에 올려서 인터뷰를 하는데, 오를 때마다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지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패션쇼를 방불케 하였다.
이러저런 일정을 소화하고 실내체육관으로 옮겨 잠자리를 펴니 이미 자정이 훨씬 넘었다. 그러나 (어떻게 모인 자리인데) 아이들이 자란다고 자겠는가. 삼삼오오 모여 게임도 하고, 카드도 하고, 체육관 안이 내내 시끌벅적하였다. 그러다가 막상 축구할 새벽 시간이 되어서 돌아보니 절반이 넘게 곯아 떨어져 있었다. 축구 보라고 깨워도 꿈쩍도 않는다.
그런 거였다. 응원은 무슨 응원! 사실은 응원을 핑계 삼아 ‘공식적으로’ 집을 벗어나 친구들과 하룻밤을 같이 ‘놀고’ 싶었던 거다. (나중에 살펴보니 참가 신청을 하지 않는 녀석들까지 언제 나타났는지 우리 반 남학생 같은 경우는 한 녀석 빼고 전원 출석이었다) 거리 응원이라고 뭐 달랐겠는가. 아이들에게 월드컵 응원은 순전히 탈출구였던 것이다. 안타까운 청춘들! 그나저나 이제 그것마저 막혔으니 어쩐다냐.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그런 거였다. 응원은 무슨 응원! 사실은 응원을 핑계 삼아 ‘공식적으로’ 집을 벗어나 친구들과 하룻밤을 같이 ‘놀고’ 싶었던 거다. (나중에 살펴보니 참가 신청을 하지 않는 녀석들까지 언제 나타났는지 우리 반 남학생 같은 경우는 한 녀석 빼고 전원 출석이었다) 거리 응원이라고 뭐 달랐겠는가. 아이들에게 월드컵 응원은 순전히 탈출구였던 것이다. 안타까운 청춘들! 그나저나 이제 그것마저 막혔으니 어쩐다냐.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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