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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넷 데리고 ‘비밀여행’…근데 비밀이 지켜지려나

등록 2006-07-30 18:06수정 2006-07-31 18:35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방학을 앞두고 학급 아이들 네 명(차 한 대 정원)을 데리고 당일치기로 서해안 바닷가를 다녀왔다. 학교에서 공항도로를 타고 4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니 가벼운 드라이브이긴 했으되, 다른 아이들 몰래 다녀왔으니 비밀여행인 셈이었다.

1학기 동안은 무리지어 학급분위기를 휘젓는 여학생들 때문에 은근히 마음고생이 많았다. 꼭이 도드라지게 문제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데, 늘 말이 많고 불평이 많았다. 게다가 저희들 편한 대로 분위기를 좌지우지하여 아이들이나 나나 불편한 점이 많았다. 편하게 대해주면 담임 머리 위에서 놀기 일쑤요(담임의 무능이 크게 부각될 수밖에), 조금이라도 다른 눈빛을 하면 픽픽 불거져 돌아앉았다. 이 녀석들과 신경전을 벌이느라 미안하게도 다른 아이들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한 채 학기말을 맞았다.

그런 중에 김아무개, 최아무개 등에게는 특히 미안한 마음이 컸다. 이런저런 학급 치장물들이 어느 순간 가지런히 정리되는 것도, 교실 창턱을 지키는 허브가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여학생 사이가 더 금가지 않고 유지되는 것도 실은 이들의 덕분이라 할만 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마음 상처가 컸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리를 지켰다. 때로는, 아직도 이런 녀석들이 있구나, 싶은 감동이 일기도 했다. 가끔 맥이 풀려 교무실에 망연하게 앉아 있으면 슬쩍 내려와 공연히 툭툭 치며 장난을 거는 것도 이 녀석들이었다. 이들에게 뭔 마음이라도 표시하고 싶은데, 일에 치여 그저 생각만 구만리 같았다.

그런데 어느 새 방학이 코앞, 이렇게 미적거리다가는 일 년이 그냥 지나 가겠다 싶어, 바로 하루 전에 통보하고, 다음 날 하교 후에 아이들을 차에 몰아넣었다. 가까운 바닷가에 가서 바지락칼국수라도 한 그릇씩 나눠 먹고 싶었다. 말하자면 빚잔치, 뭐 그런 거였다.

“야. 이거 비밀이야. 다른 놈들이 알면 너희들이나 나나 살아남지 못한다. 알지?”

바닷가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표정이 환해졌다. 한산한데다 때맞추어 일몰도 근사했다. 해변을 뛰다가 낚시도 하다가, 종아리에 달라붙는 모기를 딱딱 때려잡으며 양푼 가득 칼국수를 떠먹다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편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간이 갈수록 마음 한 쪽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다른 녀석들의 얼굴이 겹쳐 떠오르기 시작했으니, 특히 속 썩인 놈들! 녀석들도 은근슬쩍 이곳에 데려오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그동안 눈치나 주고 구박만 퍼부었지, 그들 나름의 고민이나 갈등을 진지하게 챙겨준 적이 있는가, 뭐 이런 자책 비슷한 것이 파도처럼 마음 속을 오고갔다.

비밀은 무슨,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한껏 신이 나서 차 안에서 온갖 수다를 늘어놓았지만, 2학기 때 수시로 이 길을 오가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뒤꼭지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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