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9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단암빌딩 선거사무실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대선 필승을 다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점퍼 차림에, 탁자 올라 연설…파격 변신
“우리는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합니다. 저도 총재라 부르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두 같이 뛰는 동지요 일꾼입니다.”
이회창 대선 예비후보가 파격을 선뵈고 있다. 이 후보는 9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사무실에 들어서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구둣발로 옆에 있던 탁자에 벌떡 올라섰다. 연설 말미엔 “우리 구호 한번 외치자. 이거 후보가 직접 나서 구호하는 게 참 뭣하지만, 그래도 워낙 급하니까”라며 머쓱한 웃음을 지은 뒤 “발로 뛰자”, “아래서 위로”, “창을 열자”란 구호를 선창했다. 그는 또 “모함하고 중상모략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며 한나라당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을 겨냥했다.
파격은 점심 때도 이어졌다. 이 후보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5000원짜리 도시락을 시켜놓고 기자들을 불러모았다. 그는 “출마 발표날 사무실 앞에 몰린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인 줄 알고 어찌 기자회견장에 들어가나 걱정했다”, “나의 우군은 여기 여러분들밖에 없다. 잘 지켜달라. 이거 밥 사주고 괜히 …”라고 말해, 기자들의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선거 내내 점퍼 차림으로 다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식사 뒤엔 이날 생일을 맞은 한 기자에게 꽃을 건넸다.
전날엔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다 마주친 기자들에게 “이거, 갑자기 출마해 불편함을 많이 드린다”고 인사했다.
이 후보는 과거 한나라당 총재 시절, 공식적인 식사 말고는 거의 약속을 잡지 않았다. 설사 자리를 만들어도 딱 폭탄주 한 잔만 마시고 일찍 자리를 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총재 시절 그의 차에 동승해 가던 중 의견 충돌이 있자 곧바로 차를 세워 내리라고 했다. 내리니 허허벌판이었다”고 회고했다. 영상홍보물을 제작하기 위해 청바지를 입으라고 설득하는 데 1주일이 걸렸다는 일화도 있다. 그만큼 차갑고 냉정했다는 얘기다.
이 후보의 변신은 ‘귀족’, ‘제왕적 총재’, ‘서울 깍쟁이’란 권위주의적이고 차가운 분위기에서 탈피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해석된다.
이흥주 홍보팀장은 “이 후보의 성장 과정이나 공직생활 등을 살펴볼 때 ‘귀족’ 이미지는 잘못된 것인 만큼 진정한 이회창의 모습을 보이려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10일엔 젊은 중소기업인들과 북한산에 오를 예정이다. 다음주엔 9일 동안 상경하지 않고 버스로 지방 방문에 나선다.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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