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의 손은 떨렸다-1944년 노르망디
일 프리랜서 사진기자 나가이
“아들이다.” 거동이 불편한 75살의 노모는 쓰러진 중년 남성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27일 밤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취재하던 프리랜서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50)가 무력진압에 나선 미얀마 군경의 총탄에 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본 노모는 금방 아들임을 알아봤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28일 전 세계 주요 신문에 실린 충격적인 <로이터> 통신의 미얀마 시위 현장 사진은 나가이 기자의 투철한 ‘기자정신’을 생생하게 포착했다. 총탄을 맞고 바닥에 쓰러진 나가이 기자의 오른손 카메라 렌즈는 군인들에 쫓기는 시위대를 향하고 있었다. 죽어가면서도 현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유혈사태 초기 단계에서 기자 신분인 그가 숨진 데 대해선 여러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얀마의 시위 상황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미얀마 군부의 ‘외국 언론 본때 보이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미얀마 군부가 고의로 그에게 총격을 가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조사 중이다. 방미 중인 고무라 마사히코 외상은 28일 “사실관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고의로 총격을 가했다는 정보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미얀마 주재 대사관을 통해 미얀마 정부 쪽에 나가이 기자의 사망 경위에 대해 확인을 요구하고 있다고 일본 외무성은 전했다.
분쟁 지역 그늘 줄곧 취재
역사 찍고 지상에서 영원으로
시민쫓던 군인, 곁에서 쏜듯
‘외국언론 군기잡기’ 분석도
<후지텔레비전>이 내보낸 영상 분석 결과, 나가이 기자는 1m 정도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피격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마이니치신문>은 28일 전했다. 이 영상을 보면, 시민들을 추격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촬영하려는 나가이 기자에게 한 병사가 다가가 총격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한 목격자는 “발포 직후 시민이 일제히 달아나려고 하는 도중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만 ‘퍽’ 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고 말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총탄이 나가이 기자의 오른쪽 흉부 아래에서 뚫고 들어와 심장을 관통했다”고 밝혔다.
나가이 기자는 타이 방콕에서 취재하던 도중 미얀마 사태가 악화하자 25일 자진해서 현지에 들어갔다. 그는 일본의 영상뉴스 공급회사 <에이피에프>(APF) 통신과 계약을 맺고, 이라크·아프가니스탄·팔레스타인 등 분쟁지역 전문기자로 일해왔다. 1989년부터 90년대 전반까지 텔레비전 뉴스프로그램 감독으로 일한 그는 “아무도 가지 않는 현장에 가서 현실을 전하고 싶다”며 프리랜서 기자로 변신했다.
그는 2003년 봄 일본에서 눈 수술을 받고 돌아간 이라크 소년의 집에서 숙박하면서 취재하는 등 분쟁의 그늘을 줄곧 취재해 왔다. 이라크에서 취재를 함께 했던 카메라기자 가노 아이카는 “압제자에 대해 마음 깊이 분노하는 정의감 강한 사람”이라고 그를 회상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일 프리랜서 사진기자 나가이
분쟁 지역 그늘 줄곧 취재
역사 찍고 지상에서 영원으로
시민쫓던 군인, 곁에서 쏜듯
‘외국언론 군기잡기’ 분석도
미얀마 군인들이 27일 최루탄을 쏘며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는 현장 왼쪽 귀퉁이에 나가이 겐지 <에이피에프>(APF) 통신 기자가 총에 맞은 채 쓰러져 있다. 양곤/AFP 연합
미얀마 군인들이 이날 민주화 시위를 취재하다 숨진 나가이 기자를 어디론가 옮기고 있다. 두 사진은 모두 인터넷 블로그에 공개됐다. 양곤/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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