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래씨
‘민주화 지지 외국인’ 수배령 피해 방콕 피신한 교민 정범래씨
부인·아들 두고 나와 “통곡”…인터넷 시위 속보·서명운동중
부인·아들 두고 나와 “통곡”…인터넷 시위 속보·서명운동중
“7년 동안 미얀마에서 어렵게 쌓은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군사독재를 경험한 한국인으로서 또 미얀마를 사랑하는 교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미얀마 교민 정범래(41·사진)씨는 시위의 불길이 타오르던 26일 밤 급히 미얀마를 빠져나왔다. 미얀마 당국자로부터 다른 외국인 2명과 함께 수배령이 내렸으며 보안당국이 이날 중으로 그를 체포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운영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현 미얀마 정부를 비방하는 글과 시위사진을 게재하고, 반정부 활동을 부추기는 서명운동을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사관과 한인회의 강력한 권유에 따라 정씨는 2시간 만에 입을 옷 몇벌과 휴대전화, 시위사진을 저장해 놓은 메모리 스틱과 비디오 테이프 하나만 겨우 가지고 방콕으로 몸을 피했다. 검거도 검거지만 외교문제로 비화돼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현재 방콕에 머무르며 미얀마 소식을 전하고 있는 정씨는 28일 전화 통화에서 “아내에게 ‘사랑한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아들 얼굴 한 번 쓰다듬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비행기에서 만난 신부님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방사선 기사로 일하던 정씨는 7년 전인 2000년 우연히 떠난 배낭여행에서 미얀마를 처음 만났다. 미얀마 사람들의 순박한 웃음과 정에 취해버린 정씨는 미얀마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결국 간호사 아내를 설득해 2002년 미얀마에 정착했다.
고생 끝에 피시방 경영을 거쳐 여행사를 운영하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한국 방송사 통신원 및 현지취재 코디네이터로, 미얀마를 한국에 소개하는 사이트 운영자로도 이름을 얻었다. 2005년엔 광주국제영화제 참여를 위해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가며 미얀마 영화인들을 이끌고 한국을 찾기도 했다. 양곤외국어대 미얀마어과를 졸업한 부인은 양곤에서 합자공장 관리를 맡고 있다.
17일부터 미얀마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위는 1980년대 총학생회 간부를 하며 대학시절을 뜨겁게 보낸 정씨의 가슴에 다시 불을 붙였다. 정씨는 순한 양처럼 침묵하던 미얀마 사람들이 하루 이틀 시위가 계속되며 거리로 나서고 민주주의를 외치기 시작하는 것을 감동으로 지켜봤다. 매일매일 카메라를 메고 거리에 나섰고 인터넷으로 이들의 투쟁소식을 전했다.
정씨는 “미얀마 국민들의 요구는 ‘삐두산다 삐와바제’(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세요)”라며 “이번에는 미얀마 국민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포털사이트 다음(agora.media.daum.net/petition/)에서 미얀마 국민들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대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사진 정범래씨 제공
그는 포털사이트 다음(agora.media.daum.net/petition/)에서 미얀마 국민들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대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사진 정범래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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