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북한 핵실험이 부른 파장은 ‘처음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미약하리라’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것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지적한대로 ‘미국 힘의 한계’ 때문이다. 11월 초 미국 중간선거 결과는 그런 현실을 재확인하면서 미국 대북정책의 일대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지난 18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반군의 공세가 확대일로를 걷고 있는 이라크 상황을, 그가 비교하기조차 싫어한 베트남전쟁 때의 북베트남·베트콩 군의 ‘테트 공세’에 견줬다. 그는 그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이라크 상황을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판 테트 공세’라고 한 데 대해 “그대로일지 모르겠다”며 “(중간)선거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이라크에선 명백히 폭력 수준이 악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트 공세’란 1968년 1월30일 새벽 공산군이 베트남 전역에서 일제히 대공세를 펴 베트남전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은 사건이다. 그날 공산군은 옛 수도인 중부의 후에와 남부 사이공(지금의 호치민)을 비롯한 베트남 전국 주요도시와 케산의 미군기지, 탄손니엣 국제공항, 미 대사관 등을 집중공격했다. 테트는 음력 정월, 즉 설날을 가리키는 베트남어로, 통상 설 명절 동안에는 쌍방이 휴전하는 게 암묵적 관례로 돼 있었으나 그 해는 달랐다. 사이공의 미 대사관을 덮친 공산군의 기세에 눌린 미국 대사와 베트남주둔군 총사령관이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났고 대사관은 점령당했다. 공산군의 공세는 미군과 남베트남쪽 반격으로 수습됐으나, 문제는 그 절박한 당시 현장이 고스란히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 전역에 방영됐다는 사실이다. 남베트남 경찰청장관이 보복조처로 대낮 거리에서 민간인 게릴라 용의자 머리에 권총을 쏴 사살하는 충격적인 장면도 전세계를 경악케 했다.
‘미국 힘의 절대적 우위’와 ‘미국의 정의’라는 환상이 박살나고 미국 전역에서 반전시위가 격화됐으며, 급기야 린든 존슨 대통령은 차기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해야 했다. 공산군은 테트 공세 전투에선 졌으나 정치적으론 대승을 거뒀다. 결국 미국은 베트남땅에서 물러나고 공산군이 베트남통일을 완수했다.
부시가 이라크 반군 공세를 베트남 테트 공세에 빗댄 것은, 이라크 상황악화는 중간선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반군들의 일시적인 공세 탓이니 너무 신경쓸 것 없는 것 아니냐는 항변처럼 들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라크 실상이 테트 공세를 떠올릴 정도로 심각하고, 그런 사정이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 안방에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은 악화되고 있고, 이대로 가면 장기간의 의회내 공화당 우위는 이번 중간선거로 끝장날 수 있다. 부시 정권이나 네오콘들은 마음같아서는 이라크뿐만 아니라 북한, 이란 등 ‘불량국가’들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 본때를 보여주면서 사태를 일거에 뒤집어 놓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다. 바로 미국 힘의 한계 때문이다.
이라크 관련 사정은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22일 미 상원에서 공화당의 리처드 루거 외교위원장과 앨런 스펙터 법사위원장, 그리고 조지프 바이든 민주당 간사 등 양당 중진의원들이 부시 정권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북-미 직접대화를 촉구한 것도 부시와 공화당에게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미국내 여론이 반영된 결과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한다면, 부시 정부는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북한체제를 보장하는 교환방식쪽으로 대북정책을 전면 재고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테트 공세’ 감행은 성공한다. 목청 높이고 있는 일본도 입닫고 뒤따라 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테트 공세? 바로 미 중간선거를 노린 김정일의 핵실험 도박 말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22일 미 상원에서 공화당의 리처드 루거 외교위원장과 앨런 스펙터 법사위원장, 그리고 조지프 바이든 민주당 간사 등 양당 중진의원들이 부시 정권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북-미 직접대화를 촉구한 것도 부시와 공화당에게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미국내 여론이 반영된 결과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한다면, 부시 정부는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북한체제를 보장하는 교환방식쪽으로 대북정책을 전면 재고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테트 공세’ 감행은 성공한다. 목청 높이고 있는 일본도 입닫고 뒤따라 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테트 공세? 바로 미 중간선거를 노린 김정일의 핵실험 도박 말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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