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행보와 다르지 않다면
생물학적 여성이라도 지지할 이유 없다
사회적 약자로서 세계를 이해하는
명실상부한 여성정치인을 원한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도 지지할 이유 없다
사회적 약자로서 세계를 이해하는
명실상부한 여성정치인을 원한다
세설
강금실 전 장관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는 경우도 많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강금실 전 장관 자신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며, 법무부 장관직을 끝으로 어떤 정치적 행보도 더 이상 내딛을 뜻이 없다고 한 말만이 되풀이해서 언론을 통해 전해졌을 뿐이다. 최근에 들어서 서울시장직을 두고 또다시 강 전 장관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강 전 장관은 법무부장관 시절에 매우 참신한 매력을 발산했었다. 그의 말투, 일하는 방식, 심지어 세련되고 화사한 옷차림까지 세간의 화제거리였다. 스스로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법조계 남성들에게는 그의 존재가 껄끄러웠을지 모르지만, 국민에게는 그의 존재 자체가 신선한 봄바람 같은 것이었다. 그는 사랑스러우면서도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나 그가 국민의 이목을 끌고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단순히 연약해 보이는 여성이 남성들의 조직에, 그것도 법무부라는 남성 일색의 조직의 수장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은 그가 지금까지의 정치인들과 전혀 다른 리더십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열광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리더십을 <부드러운 단호함>이라는 말로 표현한 적이 있다.
여성 정치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또는 어떤 존재여야 할까? 단순히 생물학적인 성적 기호만 가지고 우리는 어떤 여성 정치인을 특별한 존재로 여겨야 하는 것일까? 그가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남성들과 다르지 않은 정치적 행동을 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는 그가 단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지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예를 들면 여성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우리는 여성의 이름으로 지지할 수 있을까? 그가 지향하는 가치는 색깔론에 철저하게 물들어 있다. 달리 말하면, 그는 타자를 배제시키는 정치적 원리를 숭앙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기득권의 변화를 요구하는 모든 정치적 행보는 <빨갱이>의 그것으로 여겨진다. 사학법을 국가정체성 문제로 몰고 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의 정치적 지향점이 승자만이 모든 것을 장악하는 3공화국의 잔인한 남성적 이데올로기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에게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가치관만이 선으로 여겨진다. 이런 정치인들을 여성의 이름으로 지지해야 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글에선가 단 한 명의 전태일을 100 명의 박근혜와 바꿀 생각이 없다고 쓴 적이 있다. 남성인 전태일이 세계를 이해했던 방식이 내게는 훨씬더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는 세계의 약자들 편에 서서 약자의 고통을 온몸으로 증언했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는 사회적 표지가 의미있는 표지인 것은 그것이 약자의 표지이기 때문이다. 철두철미하게 강자의 편에 서 있는 여성 정치인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여성의 이름으로 지지해야 할 가치가 아니다. 우리가 여성 정치인을 기다리는 것은 그가 남성들이 세계를 경영해 왔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경영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인 성만 다를 뿐, 남성 정치인과 단순히 자리바꿈만 해서 남성 정치인이 추구했던 것과 똑같은 가치를 실현한다면, 그를 여성의 이름으로 지지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강 전 장관은 무늬만 여성정치인인 정치인들과 전혀 다른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그의 <부드러운 단호함>은 단지 <패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내용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미지만 있을 뿐, 컨텐츠가 텅빈 여성정치인들과는 다르다. 그는 지성적이면서도 매력적이다. 이미지와 컨텐츠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여당의 러브콜 안에는 틀림없이 현재의 형편없는 지지율을 만회해 보기 위한 정치적 술수가 들어 있다.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인다. 게다가 열린우리당은 뭘 좀 하는가 싶으면 뒤돌아서서 대형 삽질을 해서 지지율을 까먹는 것 외에는 할 줄 모르는 듯한 걱정스러운 정당이다. 지켜보고 있자면 울화통이 터져서 견딜 수가 없다. 그 안에 들어가 진흙을 뒤집어쓸 일 있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현재의 여당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도로 국민은 강금실 전 장관같은 정치인의 등장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여당의 손짓과 무관하게 강금실 전 장관을 기다리는 국민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더욱 애가 탄다. 우리도 명실상부한 여성정치인을 가져 보고 싶다. 그 마음은 그 동안 여성 정치인들이 보여준 행보가 예외적인 몇 가지 경우를 빼고는 무척이나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더더욱 간절하다.
강 전 장관은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행복은 아마도 자유를 말하는 것이리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언행을 통해 미루어 보건대, 그는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자유를 속박하는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상당 부분 자유를 유보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가 그의 결심으로 인해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해 줄 수는 없을까? 그와 함께 공동체가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잠깐 동안만 그 자유를 유보해줄 수는 없을까? 나중에 좀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강 전 장관의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식견 때문에도 그가 서울시장에 출마해 주기를 바란다. 문화가 특정 정치인의 자기 과시를 위한 들러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행동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시장을 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서울시민들이 행복해지겠는가?
김정란/상지대 교수·시인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