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나는 옛 사학법이 한 일을 알고 있다

등록 2006-01-05 19:34수정 2006-01-06 17:54

종교재단이 세운 학교일지라도
하늘나라가 아닌 이땅에 세워진 이상
이땅의 제도적 합리성을 거부해선 안 된다
종교적 가치는 공적 가치를 감싸야 한다
세설

사립학교법 개정을 문제삼아 한나라당이 무한투쟁을 결의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개정된 사립학교법을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악법으로 규정하고 의원총회에서 눈물로 호소하며 투쟁을 다짐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표의 진단에 따르면,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전교조의 학교 장악을 가능하게 하므로 체제를 위협하는 악법이라는 것이다. 만일 박근혜 대표의 주장대로 전교조가 그토록 위험한 체제전복 세력이라면, 박근혜 대표는 길거리에 나서서 투쟁을 벌이기 전에, 한나라당이 그토록 보물단지처럼 여기는 국가보안법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으므로, 전교조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부터 하고 볼 일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전교조를 걸고 넘어지는 것은 순전히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국민은 모두 알고 있다. 백보 양보해서 한나라당 주장대로 전교조가 지극히 위험한 세력이라고 하더라도, 개정된 사립학교법으로 전교조가 학교를 장악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제로에 가깝다. 한나라당 의원들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모든 것은 결국 박근혜 대표가 자신의 대권 가도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수준낮은 선동에 불과하다. 과연 독재자의 후예다운 행동이다. 디바이드 앤드 콘트롤. 선동을 통해 공포를 주입하면서 이간질하고 장악하기.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그 사이 개악되었던 사립학교법을 제 자리로 돌려놓은 수준에 불과하다. 그 안에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체제전복적 요소는 아무것도 없다. 열린우리당은 이 법안을 상정하기 전에 한나라당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많이 양보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이 법안을 상정조차 하지 못하게 하면서 예의 어깃장을 부리기 시작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각 집단 간에 이견이 존재할 때, 우선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되고, 충분히 토론을 거친 다음, 도저히 합의에 도달할 수 없으면, 법안을 상정하고 표결에 들어간다. 법안 상정을 놓고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이 존재할 때, 국회법에 명시되어 있는대로 의장이 직권 상정할 수 있다. 사립학교법은 자유민주주의의 민주적 절차에 따라 표결처리 되었다. 대체 무엇이 날치기라는 것인가. 언제까지 자기들 마음대로 해주지 않으면 국회에 못질하고 문을 잠그고 드러눕는 세력의 어깃장에 끌려다니라는 말인가.

나는 학교를 자신의 사금고로 생각하는 재단이사장이 학교를 초토화시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런 재단과 맞서 오랫동안 싸우면서, 양심없는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이 어떤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등록금을 착복하고 국가보조금을 횡령하는지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부도덕한 이사장들이 학교에서 뜯어낸 돈으로 조성된 엄청난 로비 자금을 풀어서 오래 전에 개정된 사립학교법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개악시키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이번에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그 개악된 부분을 덜어낸 정도에 불과하다.

상지대학교 구성원들은 부도덕한 재단과 싸우기 위해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농성장에 앉아서 논문을 쓰던 기억은 아마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상지대학교 구성원들은 교수, 교직원, 학생이 함께 노력하여 타락한 재단을 물러가게 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임시 이사 체제를 벗어나 정이사 체제로 안정되었고,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민주적 체제를 자랑하면서, 전 이사장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상지대학교 구성원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법적인 제도 완비야 말로 사립학교의 건강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달았다. 이번에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재단의 전횡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 도입에 불과할 뿐이다.

사립학교는 사재로 세운 재단이므로 개정된 사립학교법이 사유재산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그 견해는 두 가지 이유에서 타당성이 없다. 첫째,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하더라도 교육의 특성상 사립학교는 다른 영리법인들과는 달리 공익적 성격을 가진다. 둘째, 사립학교는 엄청난 규모의 국가 지원금을 받고 있다. 실제로 재단 전입금이 전무하다시피 한 재단이 사립학교 재단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사립학교를 단순한 사유재산으로 볼 수 없다. 단 10원의 국고를 지원받는다 하더라도,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곳이라면 학교 내부 구성원이 아닌 다른 인사가 그 사용을 감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투명성의 확보다. 모든 것이 투명한 사립학교라면 외부인사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를 통해서 학교의 투명성을 밖에 알릴 수 있으므로 학교 홍보를 위해서도 적극 환영할 일이다.

교육은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추구하는 일이다. 종교재단에서 경영하는 학교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늘나라가 아니라 이 땅에 세워져 있는 한, 이 땅이 요구하는 제도적 합리성의 도입마저 거부해서는 안된다. 교육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향하든, 함께 사는 일을 가르치는 것이지, 나 혼자 사는 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 가치 추구도 공익 추구와 함께 가야 한다. 양자는 결코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 가치는 공익적 가치를 감싸 안는다. 예루살렘은 아테네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감싸 안는다.

김정란/상지대 교수·시인
김정란/상지대 교수·시인
열린우리당은 끝까지 성심껏 한나라당을 설득하되, 한나라당이 지금처럼 시대착오적 생떼를 쓰면서 박근혜 대표 대권창출을 위해 거짓으로 국민을 선동하는 일에는 분명히 쐐기를 박아야 한다. 상생이란 상호 간의 합리적인 게임 룰 준수를 전제조건으로 할 때에만 가능하다. 상대가 자기 뜻대로 안해 준다고 민주적 절차를 어기고 장외로 뛰쳐나가 정치적 술수로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면, 그 상대는 게임을 포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1.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구준엽 아내 서희원 숨져…향년 48 2.

구준엽 아내 서희원 숨져…향년 48

인상파 대가 오지호 명작 ‘사과밭’과 ‘남향집’의 엇갈린 뒤안길 3.

인상파 대가 오지호 명작 ‘사과밭’과 ‘남향집’의 엇갈린 뒤안길

“알고 보면 반할 걸”…민화와 K팝아트의 만남 4.

“알고 보면 반할 걸”…민화와 K팝아트의 만남

2025년 ‘젊은작가상’ 대상에 백온유…수상자 7명 전원 여성 5.

2025년 ‘젊은작가상’ 대상에 백온유…수상자 7명 전원 여성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