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사꾼의 유쾌한 성공이야기> 여성신문사 지음. 농촌정보문화센터 펴냄. 1만1000원
잠깐독서 /
여성 농업인 시이오 15명의 화려한 파노라마보다 대지의 얼굴을 한 ‘농사꾼’ 어머니의 애환이 훨씬 감칠난다.
신혼여행 대신 돼지 5마리를 선택하며 초보 농사꾼의 길에 들어선 김현숙씨. 김씨는 강원도 정선에서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농가를 돌며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했다. 동네사람들은 수군거렸다. 30년 전이니까 오토바이를 탄 젊은 여자는 탄광주변 티켓다방 아가씨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김씨는 아랑곳하지않고 오토바이에서 포크레인으로 바꿔탄다. 그리고 가축 인공수정사 자격증도 땄다. 강원도 여성으론 최초였다고 한다. 족보가 좋은 수소의 정자를 받아 직접 암소의 자궁에 넣어 수정을 시킨다. 이웃들은 또 수군거렸다. “멀쩡한 여자가 남의 집 소 궁둥이에 손을 쑥 넣고 이게 무슨 낯 뜨거운 짓이냐” 혀를 끌끌 차는 동네 할아버지의 탄식이 들리는 듯 하다. 김씨는 소 임신 감정 같은 부가서비스 전략으로 보수적인 농촌사회 연착륙에 성공한다. 지금은 농장에서 2백마리의 한우를 키우고 있는 김씨는 귀농 희망자들에게 “뼛속까지 농촌사람이 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충고한다.
석탄가루 같은 시커먼 숯가루를 한입에 삼킨다는 ‘대나무 숯 전도사’ 박득자씨. 합천에 있는 박씨의 숯 공장에 큰 불이 났다. 공장이 숯더미가 되고 박씨의 가슴도 새카만 숯덩이가 돼버렸다. 무리하게 기계를 돌리다 자신의 손가락이 잘려나간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사랑하는 아들마저 숯을 만들다 손가락을 다쳤을 때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박씨의 대나무 숯은 국내 유명 소주와 담배에 들어가 숙취와 타르를 잡아주고 있다. 박씨는 “농촌의 차별화만이 미래를 밝힐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 두사람 외에도 ‘홍삼과 만난 돼지’ ‘행복한 고구마’ ‘수제 치즈’ 처럼 우루과이 라운드를 넘고 FTA(자유무역협정)의 파고를 헤쳐가는 한국농업의 촛불 행진을 만날 수 있다. 또 ‘성공 10계명’과 ‘후배 여성 농업인에게’ 코너는 현장의 땀내와 온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유익하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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