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희망>리베커 소울닛 지음. 서준규 옮김. 창비 펴냄. 1만2000원
잠깐독서 /
9·11테러에 대한 미국 부시 행정부의 극단적인 대응은 세계를 더욱 위험에 빠뜨렸다. 세계의 진보운동도 참담한 패배를 거듭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진보는 위기인가? 미국에서 활발하게 환경·반핵·인권운동을 벌여온 리베커 소울닛은 그렇지 않다고, 이 책의 제목처럼 <어둠 속의 희망>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세계정세와 진보운동의 흐름을 바꿔놓은 다섯가지 사건에 주목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1989년), 멕시코 토착농민 혁명운동(1994년), 미국 시애틀 세계무역기구 회담 봉쇄(1999년), 9·11테러(2001년), 전 세계적 평화운동(2003년)이 그것이다. 지은이는 이들 사건의 의미를 재해석하면서,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는 자발적이고 광범위한 전 지구적 운동이 물밑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음을 확신한다.
문제는 진보세력이 세계 지형의 급변에 적응하지 못하고 운동방식의 변화를 일궈내지 못한 데서 비롯한 조급증 내지는 불확신이다. “부시는 유권자들이 세계의 진정한 문제들에 눈감게 한 반면, 좌파들은 그 문제들에 지나치게 시선을 고정함으로써 그 너머를 바라보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지은이는, 시선을 돌려 어둠 속을 보는 법을 배우라고 권고한다. 무시하고 보지 못하도록 길들여진 곳에서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곳도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운동방식은 낙담과 좌절 속에서 창조적 상상력으로 희망을 길어올리는 것이라야 한다. 1960년대식 운동(유럽의 68혁명과 미국의 반전운동)과 파편화된 정치에 이은, ‘운동의 세번째 물결’이다.
특정한 지도자도 없고 반(反) 이데올로기적으로까지 보이는 즉흥성·협업성·창조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는 점에서 지은이의 생각은 무정부주의와도 닿아 있다. “희망을 배신하는 죄는 용서와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유일한 죄”이다. 얼핏 낙관적 예언서 같지만 그 낙관이 결정론적 ‘계시’가 아닌 역사적 ‘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미래 운동에 대한 과학적 지침이기도 하다.
조일준 기자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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