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향해 걷다.
야마오 산세이 지음. 최성현 옮김. 조화로운삶 펴냄. 9800원
잠깐독서 /
일본 야쿠시마섬에는 7200년을 살아온 삼나무가 있습니다. 인간의 시간으로는 셈하기 버거운 세월을 덤덤히 견딘 그 삼나무는 야마오 산세이의 스승입니다. 시간은 반드시 직진하지 않고, 회귀한다는 점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지나면 또 하루가 시작되고, 봄여름가을겨울은 해마다 돌아옵니다. 생로병사를 반복하면서 이 땅에서 4백만년을 살아온 인간 역시 직진하는 동시에 회귀하는 지구의 일부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해가 비치지 않는 동쪽 산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해가 숨는 서산에서 일합니다. 산양 세 마리를 먹일 풀을 베고 밭을 돌보고 산을 개간합니다. 몸이 지치면 나무 그늘이나 시원한 냇가에 앉아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봅니다. 일몰 두 시간 전엔 마흔 마리 닭들에게 모이를 줍니다. 해가 진 뒤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섬 생활 10여년 동안 영락없는 ‘산골아이’로 자란 다섯 명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립니다. 27년 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와 술 잔을 기울이는 시간은 또 얼마나 소중한가요. 기둥에 건 시계가 밤 11시를 알리면, 냄비에서 소리 없이 끓고 있는 따끈한 물을 마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바다와 이야기를 나누는 어부가 되거나 조용히 세계를 빚는 도예가가 되거나 땅을 보물로 여기는 농부가 되기를 바라지만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자기를 잃은 채 쓸모없는 경쟁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미래와 마찬가지로 과거를 향해서도 흐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강한 것을 찬미하는 일본인들은 지구 생명체에 켜진 빨간불을 무시한 채 ‘모두 함께 건너면 괜찮다’며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아는 이들은 모두 약자입니다. 땅과 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지구와 더불어 나이를 먹고 흙으로 돌아가 또다른 생명으로 영겁의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이런 삶, 어떤가요?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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