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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레지스탕스가 억압한 부역의 기억

등록 2006-11-23 21:05

비시 신드롬
앙리루소 씀 이학수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2만5000원
비시 신드롬 앙리루소 씀 이학수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2만5000원
잠깐독서

‘기억’이란 이제 역사학이나 정치학에서 전혀 낯설지 않은 단어다. 서구사회에서 1980년대 중반은 그 기점이었다. 홀로코스트를 상대화 가능한 역사로 제기한 독일 역사가 논쟁, 미국에서의 퍼블릭메모리 논쟁이 잇달았다. 1987년 출간된 프랑스 역사학자 앙리 루소의 <비시 신드롬> 또한 그 주역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 말은 1990년 간행된 2판을 번역했다)

나치독일과 휴전협정을 맺고 1940년 7월10일 온천휴양도시 비시의 한 카지노에서 출범했던 페탱의 정부는, 프랑스인들에겐 한동안 ’지워져버린 역사’였다. 출발점은 드골이었다. 드골은 자신을 레지스탕스의 상징적 인물로 내세운 뒤 레지스탕스 자체를 민족신화로 만들었고, 독일에 협력을 했던 비시 정부를 프랑스의 공식역사에서 빼놓으려 했다. 1976년 조사에서 프랑스인들 53%는 “1940~44년 프랑스의 국가수반이 누구였는지 모른다”고 대답했을 정도다.

루소에 따르면 1944년 이후 ‘미완의 애도’‘기억의 억압’시기를 거쳐 드골의 레지스탕스 신화는 완성됐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제기되는 의문과 몇몇 재판들을 거치며 “비시 체제라는 시신은 아직도 피가 채 식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루소는 증언들 뿐 아니라 기념식이나 추모행사, 영화, 교육 등 구체적 사례를 분석한다. 만들어진 역사(신화)가 억압한 기억의 문제를 제기한 이 책은, 프랑스가 정당한 방법으로 과거청산을 한 국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완전한 것임을 폭로한다.

침략자와 희생자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동아시아에서, ‘기억’의 문제는 끊임없이 역사 상대주의로 귀결될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루소가 강조하는 ‘기억’이 “모든 역사는 지배신화”라는 식의 주장이 아니라 “복수이며 변화하고 갈등하고 충돌하며,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대에 따라 전이되는 것”임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단순한 민족주의적 관점의 과거 심판이 아니라, 억압되어 있던 기억들을 불러오는 것은 현재의 동아시아에도 적잖은 함의를 가질 것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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