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의 숏컷. 김지운 지음, 마음산책 펴냄. 1만원
잠깐독서
감독이 되기 전 캠코더 한번 들어본 적이 없다. 미학이 기술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기술은 미학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또 다른 세상을 그리는 판타지만 품고 있으면 된다.
식음을 전폐하고 그림만 그리던 꼬마. 교복 단추를 몇 개쯤 풀고 모자는 돌돌 말아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아이. 세운상가를 기웃거리던 아이. <달콤한 인생> <반칙왕> <조용한 가족> <장화, 홍련>을 만든 감독, 김지운이다.
그는 말수가 적고 낯을 가린다. 시선을 어디 둘지 몰라 선글래스를 쓴다. 국민여동생 문근영은 “감독님 혼자 다니지 마세요”라고 부탁한다. 영화도 혼자 보러 다닌다.
그는 시나리오를 빨리 쓰는 편이다. 다년간 쌓은 백수공력 때문이다. 나이가 찬 아들이 놀고 있으면 보통의 아버지는 공인중개사나 공무원 수험서를 갖다 안기며 “어떻게 하지 않을래” 협박, 애원한다. 그도 역시 그런 압박 속에서 10년간 빈둥빈둥 논다. 그 시간 동안 한번도 쏟아내지 않았던 상상력의 비밀계좌는 무진장한 창작욕구를 쏟아낸다. 시나리오가 당선돼서 어머니에게 자랑했더니 “이제 거짓말까지 하냐” 그런 말까지 듣는다.
책의 제목 숏컷은 뭘까. 야구로 치자면 저스트 미팅, 축구로 치자면 숏 패스, 권투로 치자면 접근전의 어퍼컷. 짧게 끊어치면 상대방에게 주는 타격은 더 크다. 여기 숏컷이 있다. 한 조각이 전부일 수 있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기도 한다. 감독의 길이 롱테이크라면 여기 숏컷들 속에 그 길들의 이정표가 촘촘히 찍혀있다.
그의 배우론 또는 대통령론을 한번 들어보자. “상대 배우의 말을 안 듣고 자기 대사만 하는 연기자의 연기가 엉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처럼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 말 같은 말을 하지 않는 통치자도 엉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바라건대, 다음 대통령은 말을 편하게 하는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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