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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초콜릿, 달콤쌉싸름의 의미

등록 2006-02-16 19:13수정 2006-02-17 16:53

사랑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이여
초콜릿의 쓰라림을 달콤함과 함께 이해하길
사랑으로 생의 쓰라린 아름다움을 이해하길
그 사랑이 자신을 넘어 공동체도 고민하길
세설

2월 14일은 발렌타인 데이. 여성들이 사랑하는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신나는 날이다. 그녀들보다는 초콜렛 상인들이 더 신나는 날인지도 모르지만. 발렌타인데이를 두고 국적이 불분명한 축제일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그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그것은 세계의 유행이란 유행은 몽땅 들어와서 열정적 에스컬레이팅을 겪는 우리 사회에서 더욱 유난스러운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원인은 그렇게 단순하기만 한 것 같기는 않다.

발렌타인데이는 269년 또는 270년 2월 14일에 순교당한 로마의 성 발렌티누스 기념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로마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 2세는 청년들을 군대로 보내기 위해 금혼령을 내리면서, 황제의 허락이 있을 때에만 젊은이들이 결혼할 수 있게 했는데, 발렌티누스 사제가 황제 몰래 젊은 남녀를 결혼시켰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결국에는 참수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전설에 따르면, 그가 감옥에서 간수의 눈먼 딸을 기도로 고쳐주었는데, 그 때문에 간수의 가족이 개종을 하게 되었고, 그 일로 황제의 미움을 받아 처형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다른 낭만적 전설이 덧붙여져서, 성인이 그 딸을 사랑하게 되어 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사랑하는 당신의 발렌티누스로부터”라는 편지를 남겼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전설은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는 현대의 발렌타인 풍습과는 그 맥락이 조금 다르다. 현대의 발렌타인 풍습은 한 영국 처녀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77년 2월14일 영국의 마거리 부르스라는 시골 처녀가 당대의 풍습을 무릅쓰고 짝사랑하는 젊은이에게 구애의 편지를 보내어 그 덕택에 결혼하게 된 것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이런 기원들이 일본의 제과회사 모리나가가 1958년에 착안한 상업 캠페인 때문에 초콜렛과 연결되었다고 한다. 모리나가 제과에서 ‘이날 하루만이라도 여성이 남자에게 자유로이 사랑을 고백하게 하자’는 캠페인을 내놓으면서 ‘초콜렛을 선물하면서 고백하라’는 말을 끼워넣었는데, 당시에는 크게 호응받지 못하다가, 1970년대 들어와서 인기를 끌게 되었고, 그것이 1980년대부터 우리 사회에 들어와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발렌타인 데이와 연관된 발렌티누스는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이다. 기독교 성인 발렌티누스 이전에 2세기 경 로마에서 활동했던 이집트 출신 기독교 이단 그노시스파 학자였던 또 한 명의 발렌티누스가 있였다. 그의 사상 체계는 대부분의 그노시스파들처럼 세계를 창조주가 아니라 열등한 조물주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보고, 구속자 예수의 개입에 의해 인간들이 신적인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단적 입장에 기독교 성인 발렌티누스의 전설이 합쳐져서 중세기의 “발렌타인 클럽”의 <영적 결혼>의 관습이 생겨나게 된다. 이 관습에 따르면, 2월 14일에 클럽 회원인 여성들이 남성들을 선택하게 되며, 선택된 남성은 1년 간 그를 선택해 준 여성을 있는 재주를 다해 섬겨야 한다. 그것을 어기면 그는 클럽에서 파문당하게 된다. 그러나 발렌타인 쌍들의 결혼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모든 기독교 이단의 공통점은 <자연>의 은총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그노시스트 발렌티누스는 인간의 신적 상태로의 상승을 인정한다. 그것은 정통 기독교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이었다. 발렌타인 클럽은 이단 발렌티누스에 기독교 성인 발렌티누스를 덧붙여 자연-사랑-에로스-기독교 영성을 결합시킨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관습에서 여성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의 게임에서 여성에게 주도권이 주어져 있는 것은 모든 고대 문화의 특징이었다.

발렌타인 데이는 겨울의 어둠이 걷히고, 모든 생명력의 근원인 사랑이 움트기 시작하는 봄의 서곡을 알리는 축제이다. 그 축제에서 오랫동안 사랑의 주도권을 빼앗겼던 여신이 남신보다 먼저 등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생명은 여신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노시스트 발렌티누스도, 기독교 성인 발렌티누스도, 마거리 부르스도, 모리나가 회사도 이 거대한 순환의 드라마에서 하나씩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을 뿐이다. 성 발렌티누스가 참수당했을 때, 새들이 짝을 짓기 시작했다는 전설은 이 축제가 동물이 먼저 알고 준비하는 계절의 순환을 반영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게다가 새는 늘 여신의 동물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어떤 우연이 사랑의 상징으로 달콤쌉싸름한 초콜렛을 선택하게 했을까? 사랑은 초콜렛처럼 쓰라렵고 달콤하다. 어쩌면 초콜렛의 달콤함은 그 쓴 맛으로 인해 더욱더 미묘한 것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랑이 죽음과 함께 있다는 것을 놀랍게 암시한다. 교황의 무시무시한 체제적인 감성 말살에 맞서, 12세기에, 벌써, 주체의 감성적이고 개인적인 르네상스적 세계 해석을 예시했던 <트린스탄과 이졸데>의 작가 고트프리트는 “고결한 영혼”이 사랑을 통해 인지하는 “쓰라린 기쁨”을 전면에 내세웠었다.
김정란/상지대 교수·시인
김정란/상지대 교수·시인
또는 어쩌면, 초콜릿의 쓰라림은 사랑을 고백하는 여성의 망설임과 두려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그대의 두려움은 오로지 달콤할 뿐인 화이트데이의 캔디로 사라져 버릴 것이므로.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대의 대답 없는 사랑은 그대의 성숙과 함께 남을 것이므로.

사랑을 시작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그들이 초콜렛의 쓰라림을 달콤함과 더불어 이해하게 되기를. 그들이 사랑의 힘으로 생의 쓰라린 아름다움의 깊이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기를. 그리하여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공동체와 종의 운명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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