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새벽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서울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전직 대통령 구속은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22년 만의 일이다. 공동취재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31일 새벽 4시45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안으로 실루엣이 사라졌다. 1998년 4월2일 대구 달성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된 뒤 실패를 모르던 18년의 기승전결이 마침내 몰락의 대서사로 막을 내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은 개인만의 비극이 아니다. 이날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자로 선출된 홍준표 경남지사는 “우리가 기대고 의지했던 튼튼한 담벼락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정되지 않은 것(미결)들은 여전히 많다. 박 전 대통령의 현재 신분은 ‘미결 수용자’다. 개인 박근혜에 대한 본격적인 사법 절차는 다음달 중순께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대통령 선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다음달 17일 전에 사건을 재판에 넘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1심 판결은 큰 변수가 없으면 오는 10월 중순께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무죄나 집행유예를 받으면 풀려난다. 그 전에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을 청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원이 청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 시기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단죄의 과정은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검찰은 기소 전에 새로운 혐의를 찾기보다는 뇌물수수, 직권남용, 국가기밀 누설, 강요미수 등 기존 13개 혐의를 탄탄하게 다지는 데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롯데와 에스케이(SK)에 대한 추가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는 ‘삼성 433억원’보다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도 주목된다. 검찰은 2014년 이후 그가 청와대에 재직하면서 저지른 각종 비위 의혹과 함께 세월호 수사 방해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은 대선을 눈앞에 둔 정치권에도 새로운 변수다. 그 파급력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야권은 대체로 박 전 대통령 구속이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힘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근혜 쇼크’는 이미 대부분 흡수됐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적폐청산과 정권교체 프레임이 약화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그 이완된 틈새를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이날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야권 주도로 민중혁명이 일어났다. 야당이 주장하는 대로 정권교체할 정부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과 구속을 관철한 힘의 근원은 제도 정치권이 아니라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의식이었다. 오는 5월9일 대통령 선거는 결과가 아니라 또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박근혜’로 상징되는 하나의 시대는 저물었고, 그 시대가 남긴 낡은 때를 벗겨내는 일은 이제 비로소 시작되고 있다.
허재현 최현준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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