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그때 좀 더 분명히 밝혔더라면…”, “그때 확실히 사과했더라면…”, “그때 우병우 수석을 경질하고 야당 말을 좀 들어줬더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보수 정당 인사들은 사석에서 이런 말들을 자주 쏟아냈다. 31일 박 전 대통령이 끝내 구치소에 수감되자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믿기지 않는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역사엔 가정이 없다지만, 이들의 뒤늦은 탄식에는 ‘최순실 사태’가 돌출한 뒤 박 전 대통령이 선택한 잇단 ‘악수’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있다.
지난해 10월25일 1차 대국민담화 이후 총 세 차례의 담화에서 박 전 대통령은 사태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밝히기는커녕 국민적 분노만 키우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최씨에게 의견을 물은 적이 있으나 보좌체계 완비 후에 그만뒀다”는 거짓 해명이 대표적 사례다. “국민께 송구하다”면서도 자신의 잘못이나 비리 혐의 등은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뒤에는 인터넷 티브이 인터뷰 등을 통해 “거짓말로 쌓아 올린 커다란 산”,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심에 ‘반격’하는 길을 선택해,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의 이런 극단적 버티기와 책임 회피는 민심을 더 자극했고 최소한의 측은함과 동정심마저 봉쇄했다. 또한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없다’는 평가로 이어져 탄핵 인용의 주요한 사유가 됐고, 사나워진 민심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결정에 힘을 보태는 결과를 낳았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선택이 지난 4년여 동안 그가 보여줬던 국정운영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쓴소리를 하는 참모를 두지 않고, 주변의 조언을 듣지 않는 ‘나홀로 국정’ 스타일이 이번에는 ‘나홀로 판단’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국정을 운영할 때도 야당과 국회 탓만 했던 ‘남 탓 정치’가 이번엔 최순실과 언론, 자신을 흠집 내려는 세력의 문제로 돌리는 ‘남 탓 대응’으로 나타났다. 박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한 의원은 “아마 박 전 대통령은 지금도 자신이 정말 잘못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류를 인정해본 경험이 없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모르는 게 비극의 진짜 원인”이라고 말했다.
상황을 극단으로 밀고 가며 벼랑 끝 승부수로 원하는 결과를 얻으며 체화된 ‘불패 확신’이 독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사립학교법 개정안 반대, 세종시 수정안 반대 등에서 특유의 버티기로 정치적으로 승리했고, 강단과 소신을 갖춘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되레 엄정해야 할 국정운영에 독선을 부르고, 자신의 명백한 과오조차 인정하지 못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