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국면부터 구속까지 돌아본
한톨 기대나마 빗나갔던 순간들
한톨 기대나마 빗나갔던 순간들
6개월 전이었습니다. 2016년 9월20일, <한겨레>가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신문 1면에 공개(▶관련기사 보기 : [단독] ‘권력의 냄새’ 스멀…실세는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 )했습니다. 그 뒤 재단, 한류, 승마, 국정농단, 블랙리스트, 세월호 7시간 등 정권을 둘러싼 숱한 의혹들이 줄줄이 터져나왔습니다. 언론들은 대통령이 스스로 사죄하고 내려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기사들을 쓰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예측 기사가 되어버렸지요. 2017년 3월10일 파면, 3월31일 구속에 이르기까지, 박 전 대통령에게 다소나마 ‘기대’했으나 빗나갔던 15가지 순간을 <한겨레> 기사를 통해 돌아봅니다. 기획/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병우 수석 논란’을 대하는 박근혜 대통령 태도로 보면, 미르와 케이스포츠 문제도 ‘언론에서 의혹만 제기할 뿐 정작 확인된 건 없지 않으냐’고 말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대통령의 ‘비선 측근’이 얽히고설킨 사안이라면,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분명히 드러내서 그 진상을 국민 앞에 드러내는 게 옳다. 다음주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만큼 우선 국회에서 미르·케이스포츠의 권력형 비리 의혹을 철저하게 파헤칠 필요가 있다. 청와대는 이번 사안이 정권과 대통령의 도덕성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분명히 깨닫고 국민의 궁금증에 대답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게 정치권력의 올바른 자세다. (9월20일, 한겨레 사설)
▶최씨가 연설문 고친 의혹 두고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어”
‘비선 실세’ 논란과 관련,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를 묻는 질문도 잇따랐다. 이 비서실장은 “아는 사이는 분명하나 절친한 건 아니다”라고 했고, 최씨의 청와대 출입 여부에 대해서도 “내가 아는 한은 없다”고 말했다. 또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친다’는 의혹에 대해선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어떻게 밖으로 회자되는지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최순실 관련 대국민 사과에도 실검 1위는 ‘탄핵’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연설문과 발언 자료 등이 ‘비선 실세’ 최순실(60)씨에게 유출된 데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직후, ‘탄핵’이 양대 포털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뉴스AS] 박 대통령 ‘녹화 사과’는 어떻게 탄생했나
대통령으로부터 사과를 받고도 많은 시민들이 ‘뒷목’을 잡는 건 ‘녹화사과’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사과 내용’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사람들은 최순실이라는 민간인이 국정에 영향을 끼쳤을지를 염려하는 건데, 그러한 의혹을 해소해주거나 설명해주지 않았다. 사과는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책임을 진다면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도 전혀 없었다. 대통령이 사태의 엄중함을 이해하고 있는지 또 다시 염려하게 된다.”
김병준 국무총리 지명자가 2016년 11월2일 오후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감과 계획을 말한 뒤 승강기로 향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또 깜깜이 개각… 여야에 통보조차 안했다
2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수습한다며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발표하기까지 야당은 물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도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했나” 사과에 또다시 실망한 민심
시민 박정인(33·회사원)씨는 “박 대통령은 자신이 불리할 때마다 자신의 과거사 들먹이며 감성팔이를 하는 것 같다”며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라는 말을 들을 땐 ‘내가 이러려고 한국 국민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용석(27·취업준비생)씨는 “사과를 하면서도 가정사와 안보를 언급해 뜬금없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은 언제나 그랬듯 자기 할 말만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으나 단 한 번도 국민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지 않았다. 11월4일 대국민 담화문 발표 때도 준비된 말만 읽고 황급히 사라졌다. 불통 대통령의 영혼 없는 사과에 국민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날 담화문 발표에 앞서 집계된 대통령 지지도는 최저치를 또 한 번 경신했다.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 평가와 관련해 ‘잘하고 있다’고 답한 국민은 5%에 불과했다(한국갤럽, 표본오차 ±3.1포인트). 20∼30대의 지지율은 1%에 그쳤다. 역대 대통령 중 최저치다. (한겨레 21, 제1136호 표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
2016년 11월4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최순실 쇄신 개각 차원에서 뽑은 인물은 하필
<사랑은 위함이다>라는 책에서 (…)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자는 ‘하늘빛명상의 놀라운 효과’라는 장에 “명상 공부를 할 때 (중략) 이 지구 땅에 47회나 여러 다른 모습으로 왔었다”고 적었다.
▶사면초가 청와대 “고심”한다지만…대통령직 유지에 무게
청와대는 특히 전날 집회가 시민 100만명(주최 쪽 추산)이 운집한,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 시위였다는 점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 박 대통령의 자진사퇴(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헌정 중단은 안된다’며 선을 긋고 있다. 이날 청와대가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권한과 책무를 강조하며 박 대통령이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진사퇴’를 제외하면, 박 대통령이 추가로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야권과 여당 일각에서 요구해온 ‘새누리당 탈당→거국중립내각 구성’과 국정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2선 후퇴’ 선언 등으로 좁혀진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25일과 이달 4일에 이어 3차 대국민 담화에 나서 수습방안을 직접 밝힐 가능성도 제기된다. (…) 여론과 정치권 동향에 따라 한발씩 물러서는 ‘찔끔 대응’을 이어가며 계속 ‘시간벌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3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시민들의 행진이 시작된 가운데 서울 경복궁 인근 청와대로 향하는 길이 경찰차벽에 막혀있다. (촛불의 흐름과 청와대 전경을 다중촬영으로 합성) 사진공동취재단
이제 박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때다. 그는 여러 차례 국민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끝까지 권력에 집착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성역 없이 철저히 진행되는 걸 막으려 했다. 이런 행동이 박근혜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에 기대했던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태워버렸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 그 직을 내려놓음으로써 자신을 뽑아준 국민에게 마지막 예의를 보여야 한다.
( ▶ 한겨레 사설, 2016년 11월14일치 )
▶ 박대통령, 검찰조사 미뤄…하야·탄핵 늦추려 시간끌기 ‘꼼수’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검찰에 조사 연기를 통보한 것은 ‘시간끌기’ 전략이라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곧 있을 최순실씨 기소 때 본인이 공범으로 적시되는 것을 피하고, 길게는 하야나 탄핵 여론이 수그러지기를 기다리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쪽 유영하 변호사는 이날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특검 도입도 예정돼 있다”는 점을 들며, 검찰에 조사 연기와 서면조사 실시를 요구했다.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대통령 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특검에서 대면조사가 확실시되기 때문에 검찰 조사 때는 서면조사만 받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다. 사실상 특검이 마무리되는 내년 3~4월께 대면조사를 받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 “탄핵 가결 땐 모든 노력 다할 것”
박 대통령은 “당에서 4월 퇴진, 6월 조기 대선을 하자는 당론을 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를 위해 정국을 안정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당론을 정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때부터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쭉 해왔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정현 대표는 오후에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의 생각은 탄핵하는 것보다 사임 쪽으로 받아주기를 원하는 바람과 심정을 전달한 것 같았다”고 전했다. 4월 사퇴를 받아들이겠으니, 탄핵안 통과를 막아달라는 메시지를 이 대표를 통해 전한 것이다.
1월23일 박근혜 대통령 현충원 참배. 청와대 제공
▶박 “태극기 집회, 촛불 두배라는데…보면서 가슴 미어진다”
“촛불시위보다 두배도 넘을 정도로 정말 열성 갖고 많은 분들이 참여하신다고 듣고 있는데, 그분들이 왜 저렇게 눈도 날리고 날씨도 추운데 계속 많이 나오시게 됐나.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해야 한다, 법치 지켜야 한다, 그런 것 때문에 여러가지 고생 무릅쓰고 나온다고 생각할 때 가슴이 미어지는 그런 심정이다.”
▶대통령쪽 변호인단 “헌재, 약한 여자 편 안들고 국회 편들어” 막말
대통령 변호인단의 김평우 변호사가 22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제16차 변론기일에 나와 돌연 원색적인 어조로 국회의 탄핵 소추와 관련 헌법 조항이 부당하다고 강변했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고 헌재 재판관과 국회 소추위원단을 꾸짖기도 하며 1시간30분이 넘게 발언을 이어갔다. (…)
“법관은 약자를 생각하는 것이 정도인데, 약한 여자 하나 편드는 게 아니라 똑똑하고 강한 변호사들에게 힘을 보태주는 것은 법관이 해선 안 될 일이라고 믿는다” “성경에도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고 했는데, 더군다나 여자 대통령에게 10분 단위로 보고하라는 건 세상 사람이 알면 웃을 일이다” “내가 서강대에서 한국 법제사를 강의한 사람인데 국정농단이란 단어는 경국대전에도 없다. 이건 당파 싸움할 때 상대당에게 쓰는 용어” “여러분 위키피디아를 들어가 보라. 미국의 어느 탄핵 소추장에도 두 가지 범죄를 섞어서 소추한 예는 없다. 한국 국회는 안하무인으로 동서고금 세계 역사에 없는 섞어찌개를 개발해 13가지를 만들어 또 하나의 큰 통에 넣었다”
탄핵 이후인 3월14일 박 전 대통령이 머무르고 있는 삼성동 자택을 찾은 김평우 변호사(오른쪽 사진)는 미용사(왼쪽)와 달리 출입을 허락받지 못해 눈길을 끌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 대통령 ‘자진사퇴 카드’ 던지면 탄핵심판은 어떻게 해야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선고 전에 ‘자진 사퇴’한다면 헌재는 몇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민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법 제53조는 ‘탄핵심판 피청구인이 결정 선고 전에 공직에서 파면됐을 때는 심판청구를 기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자진 사퇴의 경우에는 따로 조항이 없다. (…)
▶ 친박 호위대 앞세워 반격 도모…박의 ‘자택 정치’ 신호탄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2일 저녁 서울 삼성동 자택 앞에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진실은 밝혀질 것으로 믿고 있다”며 장기전 태세에 나설 뜻을 분명히 했다. 임박한 검찰 수사는 물론 이후 재판 과정 등을 통해 법정 투쟁을 최대한 끌고 가겠다는 주장이다. (…) ‘자택 앞 메시지’를 놓고는 박 전 대통령 쪽에서도 “예상외로 강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준비했다고 한다. 이른바 ‘태극기 시위대’ 등 지지세력에게 탄핵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설파해 헌재 결정의 부당함을 강조하고, 장외 여론전을 통해 검찰에 ‘정치적 부담’을 안기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소환 하루 전인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박 전 대통령 집 앞이 경찰과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 등으로 혼잡한 모습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칼럼/신승근] 대국민 선전포고, 박근혜의 오기와 패착
그의 입장 발표는 법적 처분에 관한 정치적 흥정, 대타협과 포용을 명분으로 ‘박근혜를 관대하게 처리하자’는 움직임을 사전에 봉쇄하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헌재가 그의 검찰·특검 조사 회피와 청와대 압수수색 거부를 헌법 수호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단죄했듯, “이 모든 결과를 제가 안고 가겠다”며 헌재와 국민에게 선전포고를 한 그에게 어떤 타협도, 흥정도, 관용도 허용해선 안 된다. ‘불복을 선동’하는 그에게 어울리는 곳은 구치소다.
다시 보면 새롭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시작부터 끝까지
1탄 한겨레가 열어젖힌 ‘최순실 게이트’의 시작 (~9월26일) 2탄 잡아떼는 청와대, 언론의 추격전 (9월26일~10월25일) 3탄 대통령 사과, 그리고 드러나는 국가의 사유화 (10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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