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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여성을 덜 모욕하는 사회에 투표하자 [정희진 기고]

등록 2022-03-08 05:59수정 2022-03-08 14:44

이번 대선은 남녀 각각 내부의 차이를 삭제하고, 20대 남녀를 기준으로 다른 유권자를 배제시키는 퇴보의 정치였다. 그 결과 20대 여성은 ‘적절한 혐오 대상’이 되었다. 남녀 불문, 우리는 여성을 덜 모욕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지난해 3월8일 113주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민주노총이 청와대 앞에서 여성과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등이 함께 하는 ‘성평등 연대 투쟁’ 선언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지난해 3월8일 113주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민주노총이 청와대 앞에서 여성과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등이 함께 하는 ‘성평등 연대 투쟁’ 선언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이번 대선은 이전 어느 때보다 ‘여성 배제’ 논란이 크다. 세계 여성의 날 이기도 한 투표 하루 전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씨가 현재의 젠더 이슈 전개 양상을 비판적으로 짚은 글을 썼다. 

여느 시민들처럼 나 역시 이번 선거에 지친 유권자다. 와중에 내 능력 밖에다 마감 일자도 촉박한 이 지면의 청탁이 왔다. 거절하려 했지만, 담당 기자(남성)의 담백하지만 진정성 넘치는 문자가 왔다. “한국의 모든 여성이 투표할 수 있게 써 주십시오.”

한국현대사에서 무난한 대통령 선거는 없었지만, 이번에는 독특하다. 가장 쟁점은 뼛속 깊은 검사 정체성 하나만으로 생존에 성공,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부부)의 존재다. 여성도 유권자다. 이는 이준석 대표의 전략과 맞물려 유례없는 유권자 비하가 속출했다. 선거를 치르겠다는 이들이 유권자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젠더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넘어 계급, 인종, 지역 등과 함께 사회 구조적 모순이다. 이미 젠더가 대통령 선거를 좌우한 세 차례 경험이 있다. 이회창 일가의 병역 비리로 인한 두 번의 패배, 아버지의 딸 ‘대통령 박근혜’의 탄생이 그것이다. 이처럼 젠더가 선거 결과를 결정했지만, 젠더에 무지한 한국사회는 이를 분석하지 못했다.

현재 젠더 이슈의 전면 부각은 “세상에 이런 일이” 수준이다. ‘대선 후보들 공약 차별점? ‘북한·여가부’에 있다. 경제·부동산은 대동소이’’(<경향신문>). ‘이번 선거 쟁점은 젠더와 대장동’(<한겨레>). 내가 생각한 노동과 기후위기 의제는 없거나 악화되었다.

문제는 젠더가 주요 이슈가 된 이유가 성차별을 시정하려는 시민과 일부 남성 간의 논쟁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정 지역 비하처럼 국민의 실생활에 무지한 페이크 뉴스가 폭발했다. 이러한 현상은 젠더에 국한되지 않고 향후, 어떤 집단도 혐오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를 위협하는 두려운 일이다. 선거시에는 여성이 유권자의 반이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목표였으리라. 남북한의 힘의 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젠더는 언제든 소환될 수 있는 새로운 ‘북풍(北風)’이 된 것일까.

20대를 유권자의 기준으로 만들 때

통념과 달리,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만은 아니다. 남성 내부도, 여성 내부도 동질적이지 않다. 어떤 집단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민은 모두 같은가? 기자들은 모두 같은가? 이주 노동자의 상황은 같은가? 차별의 정의 중 하나는 어떤 집단(‘서구인’)은 개인으로 간주하면서, 어떤 집단은 마치 전체적 특징이 있는 것처럼 재현하는 행위다.

사회는 남성과 남성의 차이, 여성과 여성의 차이가 복잡하게 얽힌 결과다. 성별만으로 작동하는 문제는, 단언컨대, 없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에 저항하지만 대항 언설이 아니며, 남녀 대결을 주장하지 않는다. 흑인과 백인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대등하지 않은 것처럼 남녀 대결 구조는 불가능한 일이다. 페미니즘은 문명과 함께 시작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협상과 공존을 위한 사상이다. 다만 운동장의 기울기 각도도 천차만별이어서, 이에 따른 다양한 페미니즘이 있을 뿐이다.

같은 성이라도 계층, 지역, 연령, 장애, 성 정체성, 교육, 외모, 건강 상태, 기후위기의 영향, 채식 여부 등에 따라 다른 삶을 산다. 나는 여성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수도권 중심주의다. 인구의 반 이상이 서울 주변에 살고 모든 사회적 인프라가 집중된 상태에서 민주주의는커녕 ‘되는 일’이 없다. 제주도도 미어터질 지경인데, 서울은 제주도 면적의 3분의 1이다. 코로나 이후에도 반복될 팬데믹 상황에서 거리두기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황당무계한 주장과 공약들을 보자. “여성 상위 시대”, “남성 역차별”, “성인지 예산을 국방비로”, “성폭력 무고죄 강화”…. 이는 젠더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대한 무지다. 여성만을 상대로 한 거짓말이 아니다. 국방이나 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에는 여성의 노동력을 동원해야 했기 때문에 최소한 이런 식의 여성 비하는 없었다. 특히 “성폭력 무고죄 강화”는 세계 최고의 젠더 폭력 사회인 한국에서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소송사회도 바람직하지 않은데, 한술 더 뜬 윤석열 후보의 ‘검찰 사회’가 나는 두렵다. 심상정 후보의 “우리나라는 무고죄 형량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팩트체크에 그나마 안도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혐오는 여성 스스로도 내면화하고 있는 집단 무의식에 가깝다. 전략이라고 할 것도 없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일부 남성의 출구 없는 심리를 자극했지만, 이는 과장된 것이다. 젠더 관련 기사에 댓글을 쓰는 이들의 성비를 보면, 언제나 80% 이상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허위 여론을 믿고 남성을 동원한 세력의 패배를 보고 싶다. 이후에도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이러한 현상을 주도한 국민의힘에 대해 민주당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은 이유는 “여성은 투명인간”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 간 빈부 격차를 젠더로 조작

이번 선거에서 성차별을 젠더 갈등으로 변질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젠더를 모르는 힘’ 때문이다. 사회 구조로서 젠더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기 때문에 여성들 사이의 차이, 남성들 사이의 차이를 남녀 차이로 환원할 수 있었다. 즉 ‘극히 일부인 중상층 20대 여성의 과잉 재현’과 ‘현역 징병 대상인 흙수저 20대 남성’을 남녀 일반으로 대립시켜 착시 현상을 만든 것이다. 계급 문제를 성별 갈등으로 조작한 것이다.

기득권 양당에 묻는다. 왜 50대 가난한 여성과 50대 중산층 남성은 비교하지 않는가. 장애 여성과 비장애 남성은 왜 비교하지 않는가? ‘서울 남성’과 ‘지역 여성’의 지위는 왜 비교하지 않는가. 이 집단이 20대 남녀 인구보다 훨씬 많다. 이들을 위한 정책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비교에서도 여성의 지위가 높은가?

남성의 이해를 침해하는 집단은 여성이 아니다.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부자들이다. 남성 문화가 생각하는 ‘피해자 코스프레 기득권 여성’은 극소수이다. 그들도 나이 든다. 같은 계급에서도, 여성의 나이듦은 남성의 나이듦과 그 원리가 크게 다르다. 가부장제 사회의 성 ‘역할’ 규범에서, 여성은 외모와 나이로 남성은 계급과 지식으로 평가된다. 이를 깨달은 젊은 여성들은 나이 들어 자신의 인격과 시민권이 ‘몸으로’ 환원되지 않고자 경제적 자립을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남성의 밥그릇을 뺏는 일인가. 남성 실업은 여성의 취업이 아니라 플랫폼-글로벌-유통 자본주의 때문이다. 기계가 사람의 노동을 대신하는 현상은 자본주의 초기부터 있었다.

우리를 덜 모욕하는 후보에게 투표하자

나는 현실 정치가 기본적으로 여성의 처지에 관심이 없다고 본다. 젠더나 환경 이슈에 관심 있는 정당은 소수당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여성의 고통은 늘 사소하고 부차적이고 드러나지 않는다. 최재천의 진단대로, “한국의 0%대 저출산 현상은 진화생물학자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남성 생계부양자는 중산층 중심의 ‘신화’였지만, 이제는 확실한 ‘현실’이 되었다. 여성에게 비혼과 저출산, 경제적 자립은 생존의 문제다. 이것이 젊은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 ‘기본값’이 된 이유고, 남성 문화는 영문을 모른 채 징병제의 피해의식과 관습에 기대어 아노미 상태다.

참정권은 차치하고,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역사는 뉴질랜드가 1893년도로 세계 최초였다. 미국 1920년, 영국은 1928년, 일본은 1945년, 프랑스는 1946년, 스위스는 1971년, 쿠웨이트는 2005년이다. 우리는 프랑스, 스위스보다 ‘앞선 나라’다. 여성의 지위 지표는 공사 영역에 걸쳐 있어서 변화가 어렵고 그 양상을 추적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여성의 지위가 나아진다고 해서 그것이 남성의 권리 침해로 이어지는 일은 없다. 남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는 여성이 아니라 헤게모니를 가진 남성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전진한다는 믿음은 근대의 발전주의 이데올로기다. 역사는 얼마든지 후퇴할 수 있다. 물론 가장 큰 후퇴는 기후위기다. 그래도 지금 한국인에게는 이전 세대 여성들의 희생으로 주어진 권리가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올랭프 드 구즈가 단두대에서 처형된 이후부터 여성들은 참정권을 위해 분신, 투옥, 피살당하고 가가호호 문을 두드려가며 투쟁했다. 존 스튜어트 밀도 여성 참정권을 외쳤다. 나는 한국사회에서도 밀 같은 남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은 남녀 각각 내부의 차이를 삭제하고, 20대 남녀를 기준으로 다른 유권자를 배제시키는 퇴보의 정치였다. 그 결과 20대 여성은 ‘적절한 혐오 대상’이 되었다. 남녀 불문, 우리는 여성을 덜 모욕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문학박사. 글쓰기와 책읽기를 좋아한다. ‘논문, 비평, 수필, 편지, 칼럼’ 등 글의 장르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학 연구자로서 공부의 목적은, 기존의 논쟁 구도와 전선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여성주의와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재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tobrazi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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