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
“여…보…세요….” 잠에서 막 깬 목소리다. “너, 지금 몇 신줄이나 알어?” 지금 학교에 와 있어야 할 시간인데 아직도 이불 속이라니. 으이구, 내가 몬 사러.
그런데 솔직히, 난 아이들의 그런 여유가 부럽다. 선생이란 자가 누구인가. 대개 중·고등학교 6년 개근한 바른 생활자들 아닌가. 말 잘 듣고, 공부 잘 하고, 그래서 선생된 자들 아닌가.
그렇게 선생 되고 난 뒤 또 애들 말 잘 듣게 하고, 공부 잘 하게 만들려는 자가 선생 아닌가. 오늘이 시험인데도 세상 모르고 쿨쿨 잘 수 있는 선생, 그리 흔치 않을 거다. 더욱이 이불 속에서 교장 선생 전화 받는 선생, 이 세상엔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당장 내일이 연구 수업이면 그것이 걱정 돼 잠 설치는 선생, 어디 한둘인가. 뿐만 아니다. 애들끼리 농담으로 한 말 가지고, 가슴에 ‘콕’ 박아 놓고, ‘씩씩’ 숨 몰아 내쉬며, 얼굴 벌개 가지고, 혈압 ‘팍팍’ 올리고, 그래야 뭐, 지 속만 상하지, 하면서도 차마 떨쳐내버리지 못하고 품 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 밴댕이 소갈딱지…
그래서 이 세상의 선생들, 그런 여유, 배짱 다 부러워들한다. 그래서 그런 여유부리는, 배짱 좋은 놈들 더 미운 거고.
아이들 중에 ‘자위맨’이라는 애가 있다. 보면 항상 다리를 달달 떠는 애다. 얼마나 심하게 떨면 책상이 다 들썩들썩, 탁! 탁! 탁! 소리가 요란하다. “선생님, ○○가 또 딸딸이쳐요. 제발 그만 좀 치라고 해 주세요. 수업이 다 안 돼요.” 아닌게 아니라 놈 때문에 정말 수업이 안 된다. 신경 쓰여서 안 되고, 웃겨서 안 되고, 또 생각(?)나서 안 된다. 그런데 솔직히 난 지금도 그 ‘딸딸이’라는 말 쉽게 입으로 내뱉지 못한다. ‘딸’ 소리만 해도 괜히 뭔가 창피하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 천연덕스럽게 잘도 내뱉는다.
방귀 역시 마찬가지다. 힘주어 ‘부욱’ 뀐 뒤 손가락으로 V 사인 만들면 호봉 올려주겠다 해도 그렇게 못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 잘도 그런다. 그래서 교실엔 냄새가 좀 나기는 하지만 그 보상으로 언제나 웃음 또한 가득하다. 그런데 교무실엔 웃음도 없으면서, ‘냄새’만 난무할 뿐이다. ‘똥 마렵다’며 한 아이가 반을 휘젓으며 휴지를 구걸한다. “나도 써야 돼”하며 다른 아이가 ‘다섯 칸’ 떼어 준다. 얼른 받아 들고 화장실로 냅다 뛴다. 잠시 뒤. 성공적으로(?) 네 칸만 썼다며 ‘한 칸’ 돌려준다. 그런데 ‘똥마렵다’고 말하는 선생 20년 동안 단 한 사람도 본 적 없다. 그러고 보면 대단한 변비다, 선생들은.
마지막 넉살이다. 종치고 한참 지난 뒤, 그제서야 어슬렁 어슬렁 나타난다. 머리는 부스스한 채. 인사 ‘꾸뻑’ 한 뒤 자리에 가 앉는다. 앉자마자 가방 속에서 뭘 꺼낸다. 뭔가 봤더니 김밥과 음료수다. 은박지 벗겨 김밥 하나 입에 문다. 앞에 앉은 아이가 몸을 돌려 하나 뺏아 먹는다. 뒤에 앉은 아이도 손을 뻗어 낼름 하나 집어 먹는다. 너그럽게 아예 은박지를 활짝 벗겨 준다. 아무래도 교실이 순식간에 소풍 장소가 될 것 같아 곁으로 다가간다. 그러자 김밥을 은박지 째 통째로 치켜든다. 그것도 두 손으로. 예의 하나는 끝내준다.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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