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졸업고사에 진학 면담에 생활기록부 정리에 정신을 쑥 빼놓고 살다 보니, 어이쿠, 창 밖으로 은행잎이 뚝뚝 떨어진다. 화단에서 목련꽃 벙글어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뭔 놈의 세월이 이렇게 화살 같다냐.
그 와중에 졸업앨범 사진 교정지가 배달된다. 눈을 감았다거나 얼굴을 찡그렸다거나 잘 못 나온 사진을 체크해서 재촬영 대상자 명단을 만들어 달란다. 이거 신경 쓰이는 일이다. 요새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가. 얼굴(사진)이 곧 목숨이렷다. 두리란 놈은 앨범 사진 촬영 날짜가 통보되자 몸매 관리해야 한다고 그 날로 점심 급식을 끊었다. 이런 판에 사진을 대강대강 검수했다가는 그 후환을 어찌 감당하랴. 그렇다고 너희들이 판단하라고 아이들에게 교정본을 넘겼다가는 너나할 것 없이 다시 찍어달라고 대들 것이 뻔할 터, 여기에 대고 ‘원판 불변의 법칙’을 외쳐봐야 말이 먹힐 리 없다.
교정 펜을 들고 표지를 넘기니 아이들이 한 가득 웃고 있다. 우리 때와는 달리 카메라 앞에서 결코 주눅 드는 법이 없는 이 녀석들은 턱을 괴거나, 뒷짐을 지고 박장대소하는 식으로 온갖 폼을 다 잡고 있다. 이놈은 훤하게 잘 나왔다. 실물보다 백번 낫다, 어쿠, 인석은 뽀얗게 나와야 한다고 썬크림을 그렇게 퍼 바르더니 무슨 경극 배우처럼 나왔구나, 새로 찍어야겠다. 체크! 아따, 이놈은 웃는 입이 요렇게 이쁘구나. 치아가 참 가지런하기도 하다. 통과!
그런데 아이들 얼굴을 보고 있자니 생각이 자꾸 곁길로 새나가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며칠 전에 지 엄마가 제발 상담 좀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깜빡 잊고 그냥 지나쳤구나! 아, 맞다, 이놈이 무슨 학습책을 알아봐 달란 지가 보름도 넘었는데, 이거 큰일났다…. 뭐 이런 미처 해결하지 못한 숙제거리들이 불쑥불쑥 치솟는 것이었다. 아, 그런 것이다. 이놈들 얼굴을 볼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결국 앨범 옆에 메모책을 나란히 놓고는 사진 검수 작업을 해야 했다. 이놈은 문집 그림을 그릴 녀석이니 당장 내일이라도 그림공책을 사줘야 한다, 아, 그리고 외고에 합격했다고 맨날 엎어져 잠만 자는 요 세 놈은 날 잡아서 잔소리를 해야 한다. 너희들은 남들보다 빠른 시간 안에 누군가를 이끄는 자리에 오를 터인즉, 너희들 생각이 똑바로 박혀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자장면이라도 사주면서 뭐 이런 꼰대 잔소리를 퍼부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사진을 다 보고 나니 메모공책 한 쪽이 가득 찬다.
창 밖에선 늦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밉든 곱든 떠나보낼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 보낼 때 보내더라도 피차 후회는 적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자꾸 헛헛해진다.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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