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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뒤늦게 안 ‘오징어’ 맛에 푹~ 빠지다

등록 2006-11-26 20:43수정 2006-11-26 20:53

주순영/삼척 진주초등학교 교사
주순영/삼척 진주초등학교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

지난번 운동회를 앞두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오징어 성공’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들은 처음 들어보는 놀이라고 했다. 이 놀이에 한번 빠져들면 해도해도 질리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이 놀이에 푹 빠져서 토요일, 일요일에도 점심까지 싸가지고 와서 해지는 줄 모르고 놀았던 이야기도 곁들였다. 아이들은 더 이상 말로만 하지 말고 빨리 밖으로 나가서 해보자며 안달이었다.

며칠 뒤 직접 운동장으로 나갔다. 먼저 막대기로 오징어 모양을 그리고 그 위에 횟가루로 선명하게 그었다. 홀수, 짝수 번호로 나누어 공격과 수비를 정했다. 처음엔 아이들이 하는 법을 잘 몰라 엉거주춤 서 있거나 몸 놀림이 소극적이었다. 금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노는 게 영 시원찮다. 안 되겠다. “야, 인주! 이때야. 쟤를 확 넘어뜨리고 목을 넘어.” “바짓가랭이 잡아 끌어서 금에다 갖다 대. 그럼 죽잖아.” “지원아, 깨금발로 뛰어나가 밀쳐.” 소리소리 질러댔다. 아이들은 “그래도 돼요?”하면서 조금씩 과감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밀치고 잡아 당기고 넘어뜨리고 하면서 아이들은 놀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넘어지고 끌려나가고 자빠지고 때론 제 힘을 조절 못해 스스로 죽어나가기도 하면서 아이들 옷은 흙투성이가 되어갔다. 팔이 흙바닥에 긁혀 피가 나고 다리가 차여 멍이 들어도 “오징어 성공 할 땐 원래 다 그런 거야” 한마디 해주면 아무 소리 없이 훌훌 털고 다시 시작했다.

그날부터 아이들은 정말 하루에도 서너 번씩 틈만 나면 운동장으로 내달렸다. 노는 맛을 본 것이다. 놀 때 보면 금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손을 내밀어 잡아당기는 걸 좋아했는데 이럴 때 자기 편 아이들이 끌려 넘어갈까봐 아이들은 둘, 셋이 함께 허리를, 팔을 끌어안고 도움을 준다. 그러다보니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아이들도 같이 몸을 바짝 붙이거나 끌어안게 돼 하나가 된다. 여기엔 여자, 남자의 구분도 없어진다. 6학년쯤 되다보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자연스레 어울려 노는 모습이 찾아보기 힘든데 그 경계마저 허물어 버린다.

승훈이는 남자지만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공을 차거나 뛰어노는 일이 없는 아이였다. 그저 조용히 할 일을 하거나 교실에 남아있는 여자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걸 더 즐기는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승훈이도 이젠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가리지 않고 밖에 나가 ‘오징어 성공’을 한다. 공부를 너무 잘해 애들한테 은근히 질투를 당하는 수연이도 내 곁에 와서 “선생님 5교시 회의 한 시간만 하고 6교시는 오징어 할 거죠?” 이런다. 며칠 전에는 우리 반이 체험학습장에 가느라 학교에 없었는데 저녁 무렵 학교에 돌아와 보니 세상에나, 운동장에 하얀 횟가루로 그려진 커다란 ‘오징어 성공’ 그림이 네 개나 그려져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하니 옆 반 아이들도 하게 되고, 5학년 아이들까지 번져나가 넓다란 운동장 여기저기가 ‘오징어 성공’ 하는 아이들로 살아나고 있었다.

컴퓨터나 텔레비전에 빠져 놀이를 잃어버린 아이들, 학원에 학교 공부에 지친 우리 아이들에겐 이렇게 맘껏 몸을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찾아보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짐짓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이 글을 쓰는 점심시간에도 우리 교실엔 한 사람도 없다. 싹 나갔다.

주순영/삼척 진주초등학교 교사 ejejr@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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