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순영/삼척 진주초등학교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
방학을 한지 절반이 돼간다. 당직하러 학교에 나왔다. 텅 빈 교실, 고요한 운동장을 보니 아이들의 숨결, 목소리가 그립다. 3층 우리 교실로 올라오는데 빈 복도가 눈에 들어온다. 교실로 갈 때 늘 마주했던 풍경, 아이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깔깔대기도 하고 서로 엉겨붙어 놀던 모습으로 하루를 열던 게 눈에 선하다.
우리 반 녀석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어떻게 된 게 기나긴 방학 내내 손으로 쓴 편지 한 장 보내는 녀석이 없냐? 그저 한 사람 있을까 말까. 아냐. 아이들 탓이 아니지. 손으로 정성들여 편지 쓰던 시대는 지났잖아. 잠깐 들었던 서운한 마음을 거두고 아이들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찾아 들었다.
이름표 맨 꼭대기에 있는 1번 김남규 전화번호부터 눌렀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낮고 우물거리는 목소리다.
“남규야. 나야 선생님. 여기 학교야. 잘 지냈어?”
“어 선생님이세요. 네, 잘 지냈어요.”
“별일은 없지? 음, 내일 우리 반 학교 나오는 날이잖아. 그런데 안 나와도 될 것 같아서.”
“왜요 선생님? 저, 나가고 싶어요.”
“아니, 왜? 춥기도 하고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 나오라고 하는 게 좀 미안하기도 하고 번거롭잖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냥 저 나가면 안돼요? 아니면 그 시간에 학원가야 된단 말이에요.”
“난 또 내가 보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지. 봉사활동 그렇게 하고 싶은 거야?”
“네. 학교를 깨끗이 해야 하잖아요. 히히.”
“그래. 그럼 남규는 내일 나와서 내 일도 좀 돕고 얼굴도 보자.”
33번 끝까지 일일이 전화를 했다. 내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 맞추며 반가워하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도대체가 감을 못잡고 내 정체를 밝힐 때까지 묵묵히 수화기만 들고 기다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얘기를 주고 받았다. 다행이 서넛만 빼고 대부분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상한 것이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더 보고 싶은 거다. 아이들도 그랬나보다. 내가 그런 전화를 했을 땐 날씨도 춥고 귀찮은데 잘됐다며 좋아하겠지 싶어 내 딴에는 생각해준다고 나오지 말랬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운동장을 들어서는데 저만치 조회대 앞에서 서성거리는 남규가 보인다. 좀 느긋하게 올 것이지 9시도 전에 벌써 왔냐. 좀 있다 보니 동혁이, 지원이, 양호도 왔다. 낯빛이 밝고 건강하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얘길 나누는데 누군가 먼저 빗자루를 들고 들어왔다. “아니, 너희들 정말 청소하러 온 거야?” 책걸상을 뒤로 싹 밀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실 청소부터 해 나갔다. “야, 참! 신기하다. 평소엔 청소 제일 잘 안하고 도망가던 녀석들이 방학에 그것도 남들 다 안할 때 이렇게 열심히 청소하네. 너희들 평소에 청소 안 한 거 보충 하는 거지?”
내 말에 어느 누구 하나 토 다는 녀석 없이 ‘흐흐흐’ 느물거리며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먼지 구덩이 속에서 비질을 한다. 옴메, 이것들. 고, 참 이쁘다야! 주순영/강원도 삼척 진주초등학교 wnejejr@hanmail.net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