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
벌써 1월 중순이 훌쩍 넘어갔다. 요즘은 편집부원 서너 명과 함께 학급문집을 만들고 있다. 아이들 글을 읽다보니 그 표정과 웃음소리까지 선연하다. 방학 직전에는 그렇게 속을 썩이던 웬수들이 글 속에서는 참으로 번듯하고 천연덕스럽다.
방학 직전에는 참 힘들었다. 졸업고사 이후 방학까지 한 달 가까이 3학년 교실은 거의 소통 부재였다. 점수에서 놓여난 아이들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아서 정상적인 수업은 거의 불가 상태였다. 그렇다고 연극이나 대학 탐방 같은 체험활동으로 모든 일정을 채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담임은 담임대로 원서나 생활기록부 같은 막바지 작업 때문에 학급을 제대로 돌볼 틈이 없었으니 각반마다 ‘땡땡이 악동’들이 속출했다. 그나마 우리 학교는 학년 말 교과수업을 주제별활동 프로그램으로 대체해서 그 폐해가 좀 덜 했던 듯 싶다.
‘주제별활동’은 이런 악습을 어찌 좀 막아보자고 3학년 교사들이 고심 끝에 짜낸 것으로, 3학년 학급을 전면 주제활동반(고교선행학습반, 교양독서반, 영양간식조리반 등)으로 재편한 것이다. 오전에는 이 가운데 두 개 반을 선택해서 활동하게 했으니, 예를 들어 철이가 ‘교양독서반’과 ‘영양간식반’을 선택했다면 1차시(1, 2교시)에는 교양독서반으로 가서 책을 읽고, 2차시(3, 4교시)에는 영양간식반에서 어머니들과 함께 간식 조리를 실습하는 식인 것이다. 그런 뒤 원래 학급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5, 6교시에 명화를 감상하면서 일과 마무리! 취지로 본다면야 학년 말에 꼭 들어맞는 맞춤형이었으나, 마지막 주에는 이것조차도 별무신통이었다. 오후 영화감상도 사정은 비슷해서, (그 유명한) <모던타임즈>가 시작된 지 30분도 채 안됐는데 몇몇 녀석들은 이미 가방을 매고 떼를 쓰는 것이다. “샘, 이거 본 거예요. 재미없어요. 집에 가면 안 돼요?”
이런 신경전 끝에 방학식을 맞았으니 아이들이 예쁠 리 없다. 그랬음에도 그냥 보내자니 뭐가 빠진 듯 허전했다. 앞으로 볼 날이 불과 며칠 남지 않은 것이다. 프리 허그(Free Huge)!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안아주면 위안이 된다는데, 아무리 미운 털이 덕지덕지 박혔다 해도 어찌 그냥 보내랴.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하는 녀석들마다 넝큼넝큼 안아주었다. 머리를 가닥가닥 볶음파마하여 해바라기처럼 하고 나타난 종찬이도 안아주고, 소연이도 안아주고, 영감같은 경민이도 안아주고…. 안고 서로 등을 토닥이다보니 뜻밖에 따뜻하고 정겹다. 사실 뭐 크게 미울 것도 없다. 부모 자식이 온갖 싸움을 벌인다고 그게 밉기만 해서겠는가. 나보다 머리통 하나씩은 더 큰 녀석들을 안고 (혹은 안겨서) 속으로 그랬다. ‘방학동안 푹 쉬면서 여행도 가고,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해라. 고통도 기꺼이 끌어안아라. 그래야 청춘도 여문다.’
이렇게 헤어진 녀석들이 가끔 문자나 보낼 뿐, 통 소식이 없다. 잘 지내기나 하는 건지, 담임 혼자 저희들 글을 읽으며 애면글면 속 끓이는 것을 알기나 하는 건지. 아이구, 웬수들!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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